[광주/전남/新명인열전]대나무로 스케이트보드 만드는 ‘대나무 박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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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충년 전남대 교수
2008년 대나무 평면화 기술 개발
건축자재-책상 등 생필품 만들어

전남대 박충년 교수가 16일 연구실에서 대나무를 평평하게 펴서 만든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대나무 가공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전남대 박충년 교수가 16일 연구실에서 대나무를 평평하게 펴서 만든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대나무 가공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박충년 전남대 공과대학 신소재공학과 교수(60)는 ‘대나무 박사’로 불린다. 수소전지 분야 국내 권위자인 그는 15년간 대나무 연구에 매달려 대나무 가공에 필요한 다양한 신기술을 개발했다. 그가 개발한 신기술을 통해 대나무를 잘라 붙이지 않고 평평하게 펴서 스케이트보드, 자전거뿐 아니라 주택 바닥재, 벽재 등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 수소전지 전문가, 대나무 박사 되다

담양군 봉산면 출신인 박 교수는 1974년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을 거쳐 1984년부터 전남대에서 재직하고 있다. 수소전지의 한 분야인 저장 합금 분야 권위자다. 그가 갖고 있는 특허만 수소전지와 대나무 가공분야 등에서 18개에 이른다.

차세대 친환경연료로 각광받고 있는 수소전지 연구자가 대나무 박사가 된 이유는 뭘까? 박 교수는 2000년 고향 지인들에게서 대나무에 무늬를 입히는 기술을 개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대나무는 세계적으로 1200여 종이 있고 국내에서 14종이 자란다. 담양은 아열대성 식물인 대나무가 국내에서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이다. 이 때문에 담양에서 나는 대나무는 중국산, 동남아시아산보다 단단하고 윤택이 있다. 담양은 예로부터 각종 죽공예품을 만들어 ‘죽향(竹香)의 고장’으로 불렸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저가 중국산 죽공예품이 대량 수입되면서 담양 대나무 가공 산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박 교수는 위기에 처한 담양 대나무 가공 산업을 살리기 위해 대나무에 무늬를 입히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기존 담양 가공업체는 대나무를 한 달 넘게 햇빛에 말려 무늬를 입혔다. 박 교수는 햇빛 대신 자외선램프를 이용해 1시간 만에 대나무에 각종 무늬를 입히는 기술을 개발해 보급했다.

박 교수는 2004년 열처리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120도 정도로 끓어오른 식용유에 좌우로 절반을 자른 대나무를 넣어봤다. 그는 식용유에 넣어둔 대나무가 일정 시간이 지나자 깨지지 않은 채 안과 밖이 바뀐 것을 보고 놀랐다. 박 교수는 “대나무는 표면과 내부의 수분 분포율이 달라 일정 조건에서 열을 가하면 깨지지 않고 펴지는 성격이 감춰져 있었다”고 말했다.

○ 대나무 평면화 신기술 개발

박 교수는 이어 대나무를 평평하게 펴는 기술 개발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뜨거운 식용유에 대나무를 넣고 쇠로 눌러봤다. 하지만 식용유에 들어간 대나무의 표면은 펴지기는 했지만 그을린 색깔이 남았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2008년 공기와 열로 대나무를 평평하게 펴는 기술을 개발했다. 색깔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1분에 11∼12cm밖에 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1분에 길이 30∼100cm, 폭 9cm에 이르는 대나무도 펼 수 있게 됐다.

박 교수는 대나무 평면화 기술을 이용해 담양군 고서면에 있는 83m² 규모의 작업장에서 스케이트보드를 비롯해 자전거, 바닥·벽면 자재, 책상, 도마 등 생필품을 만든다. 박 교수는 “대나무는 금속과 나무의 중간 성격을 갖고 있다”며 “열전도율은 나무에 비해 3배 빠르고 껍질은 금속처럼 단단하다”고 말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대나무를 건축자재로 사용하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듯하다. 또 대나무 바닥재는 금속처럼 잘 긁히지 않는다. 대나무 스케이트보드나 자전거는 탄력성이 좋다. 중국산 대나무 건축자재는 왕대나무를 사각형으로 잘라 붙여 품질이 떨어진다. 박 교수가 대나무를 펴서 만든 생필품은 인건비 때문에 중국산보다 가격이 높다는 것이 단점이다. 스케이트보드의 경우 바퀴를 제외한 몸체 제작비가 평균 5만 원, 건축자재는 m²당 5만 원 수준. 그는 “대나무 평면화 특허 등이 있지만 홍보가 되지 않은 탓인지 아직 상용화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9월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 담양에서 열리는 세계대나무박람회에서 진행되는 학술대회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대나무 관련 종사자들로 구성된 한국대나무발전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그의 연구 성과를 전해 들은 말레이시아에서는 2013년 현지에 대나무 평면화 기술을 이전해 생필품 생산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다. 박 교수는 “대나무는 무게에 비해 강도가 높고 열전도율이 좋아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수소 및 신에너지학회장도 지낸 박 교수는 현재 포스코에서 현장 자문 역할을 하는 석좌교수로 수소전지 분야에서도 왕성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수소전지 분야는 연구자가 많이 있지만 대나무는 거의 없어 소재 연구자로서 대나무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신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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