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산 인질극, 가정폭력 외면한 경찰이 화를 키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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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시의 인질 살해극은 경찰이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는 비극이었다. 범인 김상훈의 부인 A 씨는 범행 발생 나흘 전인 8일 안산 상록경찰서 종합민원실을 찾아가 “남편이 폭행하고 아이들과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종합민원실의 민원상담관이 “현행범 사건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며 “다음에 또 그러면 112에 신고하든지 고소장을 제출하라”고 말해 A 씨는 돌아서야 했다.

A 씨가 경찰서로 찾아가 피해 사실을 알렸는데도 경찰관 출신의 민원상담관이 고소장 타령만 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의료기관이나 보호시설의 종사자도 가정폭력 범죄를 알게 되면 즉시 신고하게 돼 있다. 허벅지를 칼로 찔리고 보복 폭력의 공포에 떠는 피해자에게 후속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길을 상세히 알려주지 않는 민원상담관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살해극이 벌어진 뒤 경찰이 A 씨에게서 ‘경찰 대처에 문제가 없었다’는 식으로 받은 진술서를 근거로 잘못을 은폐하는 데 급급한 것은 더욱 무책임하다.

상록경찰서의 민원상담관이 가정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을 숙지하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2011년 개정된 이 법 규정에는 가정폭력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거나 긴급한 상황일 때 격리 조치와 100m 이내 접근 금지 등 임시 조치를 경찰이 직권으로 할 수 있게 돼 있다. 2013년 경찰관 8932명과 가정폭력 수사관 933명을 조사한 결과 57.9%가 ‘가정폭력 사건은 가정 안에서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답하는 등 가정폭력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 경찰의 인식부터 문제다. 박근혜 정부가 가정폭력을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과 함께 ‘4대 악(惡)’으로 꼽아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했던 선언이 무색해졌다.
#안산 인질극#가정폭력#살해#현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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