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98>집안의 에스키모와 평화 만들어가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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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 언어는 눈을 여럿으로 나눠놓았다. 웬만한 언어로는 ‘눈(snow·雪)’ 하나밖에 없는 것을, 에스키모는 세분해 소통한다는 의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가나(gana)라 부르고, 땅에 쌓인 눈은 아풋(aput), 바람에 휘날리는 눈은 픽서폭(pigsirpog), 바람에 날려 쌓인 눈은 지먹석(gimugsug)이라고 한다. 표현이 수백 가지라는 주장도 있으나 자주 쓰이는 말은 네 가지라고 한다.

여성의 언어 또한 에스키모의 눈 표현과 비슷하다. 아니, 더 복잡하다. 희로애락이라는 뿌리에서 파생되어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말들이 빚어진다.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바람에 당사자조차 정리가 안 될 때도 있다.

퇴근한 남편이 식탁에 앉으면, 아내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한다. 남편은 관심이 없다. 새로울 게 없는, 늘 하던 얘기라서다. 하지만 아내에겐 그렇지 않다. 어제 만난 동네 친구를 마트에서 또 만났더라도 대화 주제와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에스키모의 눈처럼 아풋이었다가 지먹석, 혹은 픽서폭, 기타 복합 표현일 수 있다.

남편이 대꾸 없이 리모컨을 들어 TV를 켜면 아내는 그가 자신에게 불만을 표현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말 안 하겠다’는 단절이자 거부로 받아들인다.

아내는 자기가 할 말이 많기에 남편에게도 많은 얘깃거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편은 매일 반복되는 회사일이므로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눈’이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외면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자꾸 질문을 던진다. “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부장이 또 뭐래?”

남편에게서 단절감만 재차 확인한 아내는 배신감에 불처럼 화를 낸다. 남편은 아내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뭘 어쨌다고?’

학자들에 따르면 여성의 감정언어 소통은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오래전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그들은 공동체 속에서만 안심할 수 있었다. 집단에서 배제당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내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부터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대화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다져놓을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즐겁거나 기분 나빴던 일에 대해 남편과 교감이 안 될 경우 아내의 불안 감지체계에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자 세계에서 식견을 무시당하면 반감이 드는 것처럼, 여성도 자기 감정을 인정받지 못하면 고립감을 느낀다. 미움이 싹튼다.

아내에게는 에스키모의 눈처럼 시시때때로 표현이 달라지는 다양한 얘깃거리가 늘 준비되어 있다.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억만금에도 못 사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경청으로 가정의 평화를 찾자.

한상복 작가
#에스키모#눈#아내#감정언어#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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