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50대, 이 겨울, 칼바람… 베이비붐 세대의 비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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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노원구 서울북부고용센터 실업급여 신청 설명회장을 찾은 중년 남성. 이날 참석자 200여 명 중 70%가 베이비부머였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9일 서울 노원구 서울북부고용센터 실업급여 신청 설명회장을 찾은 중년 남성. 이날 참석자 200여 명 중 70%가 베이비부머였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12월 말 경남 창원 본사와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하는 52세 이상 사무직 450여 명 가운데 200여 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두산중공업은 근속연수에 따라 최대 2년 치 통상임금을 위로금으로 지급하고, 대학생 자녀에게는 1년 치 등록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NH농협은행은 올 초 270여 명의 명예퇴직을 확정했다. 대상자는 대부분 정년(현재 만 58세)을 코앞에 둔 직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분기까지 3조2772억 원의 적자를 낸 현대중공업은 14일 사무직 과장급 이상 1500명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 계획을 밝혔다.

기업들의 ‘희망퇴직’이 줄을 잇고 있다. 경기 침체로 저(低)성장 국면이 장기화하고,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인건비 증가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진행되는 대규모 구조조정은 내년 300명 이상 사업장부터 실시되는 정년연장법(만 58세→만 60세, 300명 미만은 2017년부터)을 앞두고, 아직 정년에 도달하지 않은 50대 근로자들을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등으로 사실상 해고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법 시행 전 정년 연장 대상자들을 최소화해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이 같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주 연령층은 50세를 넘긴 ‘베이비부머’다. 베이비부머는 전쟁 직후 사회적, 경제적 안정에 따른 높은 출산율로 형성된 세대로 생산가능인구를 대거 공급하며 경제성장을 이끄는 특징을 보인다. 한국의 경우는 1955∼1963년 출생한 사람들로, 통계청이 추산한 올해 인구는 약 709만 명이고, 이 중 312만 명 정도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1955∼1957년생(만 60∼58세)은 이미 정년이 넘어 회사를 떠났거나 올해 정년을 맞은 세대이기 때문에 퇴출과는 상관이 없다. 베이비부머 중 아직 정년이 되지 않은 1958∼1963년생(현재 만 57∼52세) 근로자들이 퇴출의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특히 1958년생 개띠들이 대표적인 ‘낀 세대’로 정년 연장의 최대 피해자”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들은 기존 제도하에서는 내년에 만 58세 정년이 돼 퇴장해야 하지만 내년부터 정년이 2년 연장되는 바람에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건비 상승을 우려한 기업들의 조기 희망퇴직 러시로 오히려 올해 회사에서 퇴출되는 비애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24년 동안 몰랐다, 회사 공기가 그렇게 차가운지…” ▼

1955∼63년생 베이비붐 세대의 비애


24년간 근무했던 직장이었다. 겨울마다 여의도를 휘감던 쌀쌀한 칼바람도, 출근 생각만 하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A 씨(52)에게 여의도는 ‘또 하나의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직원은 ○○증권의 가족’

1989년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하고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입사한 증권사 입구에서 처음 마주한 문구다. 정말 그랬다. A 씨와 회사는 진짜 가족처럼 서로를 챙겼다. A 씨는 회사에 열심히 ‘효도’했고, 회사도 A 씨를 세세히 챙겼다.

회사가 준 일을 소중히 여기며 성실히 조직생활을 하는 게 미덕이었던 시대. 베이비붐 세대인 A 씨도 그 시대의 교훈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그 교훈을 충실히 지킨 결과는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

정년 연장 앞두고 ‘퇴출 프로그램’ 가동

2013년 12월 23일. 마지막으로 퇴근 도장을 찍고 여의도 거리로 나왔다. A 씨는 “여의도 겨울바람이 그렇게 살을 엘 정도로 차가운지 그때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린 지 24년이지만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회사를 부모처럼 여기고, 정열도 바쳤지만 A 씨를 내보낼 때는 매몰찼다. 퇴직 7개월 전인 2013년 5월 정년 60세 연장법이 개정됐지만 이 제도는 ‘그림의 떡’이었다.

“나이 많고, 직급 높은 직원들은 무조건 퇴출 프로그램에 가야 한다던데?”

2013년 7월 여느 날처럼 출근해 업무 준비를 하던 A 씨는 동료들이 수군거리는 얘기를 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퇴출 프로그램은 희망퇴직을 실시할 때 주는 1억∼2억 원을 아끼기 위해 회사가 직원에게 스스로 사직서를 내도록 종용하는 제도였다. A 씨를 포함해 퇴출 프로그램 대상자는 모두 20명. 그들이 모두 처음 만난 날, 다들 죄수처럼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떻게 영업할 건지 보고서를 내야 했다. 일종의 반성문이었다. “계좌유치 등으로 월 2000만 원씩 수익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목표량도 떨어졌다. 퇴출 프로그램 책임자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야근이라도 하라”며 오후 10시까지 A 씨를 사무실에 남겼다.

“이를 악물고 버텼죠. 정년퇴직은 바라지도 않았어요. 다만 애들 대학등록금 때문에라도 최소 3, 4년은 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날마다 사표를 쓰고 싶었지만 그렇게 버텼어요.”

끝까지 버틴 직원에게는 ‘최후통첩’이 떨어졌다. 2주마다 지점을 옮겨 다니도록 한 것. 여기서 나가떨어진 직원에게는 대기발령을 냈고, 책상을 없애고 직위도 박탈했다. 결국 A 씨도 2013년 12월 스스로 사직서를 냈다. 물론 명예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퇴직 이후 평생 몸을 바친 직장에서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에 뒷목이 땅기고 하루 종일 머리가 멍했다. 요즘도 소화제를 끼고 산다. 악몽도 많이 꾼다. 스트레스가 겹쳐 고혈압 판정까지 받아 약도 먹고 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장남인 그는 주저앉을 여유도 없었다. 보험설계사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한 달에 150만 원을 벌기도 벅차다. 월급이 증권사를 다닐 때의 4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아이들 학자금을 대려면 어쩔 수 없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지금도 그는 보험상품을 팔기 위해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사장이 빗자루질 하면 해고 신호”

경기 구리시의 한 중소유통업체서 일하는 이모 씨(52)는 하루하루 해고의 불안 속에서 일한다. 한때 가구점을 운영하며 잘나가는 ‘사장님’으로 불렸던 이 씨는 사업이 기울면서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을 해왔다. 당시 중고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일자리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전체 직원 수가 10명인 이 씨의 회사는 2017년부터 정년연장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고참급인 이 씨는 늘 정리해고의 부담에 시달린다고 했다.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사업실적에 따라 한두 명은 쉽게 해고하고 또 새로 채용하는 탓이다.

“근속 연수가 길다 보니 월급을 많이 받는 내가 늘 정리해고 우선순위에 오르는 거죠.”

사장의 ‘빗자루질’ 하나 예삿일로 보이지 않는다. 직원을 자를 일이 있으면 사장이 작업장에서 빗자루질을 시작하기 때문. 이때는 모든 직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같이 청소를 해야 한다. 해고의 신호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해고 압박을 견뎌내는 방법은 일평생을 그래왔듯 그저 열심히 일하며 버티는 것뿐이다. 비교적 나이가 젊은 직원들은 손쉽게 일을 그만두기도 하지만 두 아들과 아내를 책임져야 하는 이 씨에게는 그런 생각조차 사치다. 눈칫밥 먹는 생활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 씨는 “그저 5년만 더 회사에 다니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두 아들이 장가갈 때 각각 작은 전셋집 마련할 목돈이라도 쥐여 보내기 위해서다.

‘철밥통 교직원’도 이제는 옛말

고용 안정성이 높아 ‘철밥통’에 비유되는 교직원 사회에서도 베이비부머들은 코너에 몰려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직원으로 28년째 근무 중인 김모 씨(53)는 “정년 연장 시행이 다가오면서 학교 측이 다양한 수단으로 퇴직을 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학교를 떠난 교직원 8명은 모두 김 씨와 같은 베이비부머였다. ‘팀장’이라는 직급을 주고 소속 팀원을 주지 않는 식으로 퇴출됐다. 김 씨는 “젊은 직원들이 윗사람에게 대놓고 나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청년 일자리만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어떨 때는 나이 많은 사람은 나가라는 압박처럼 느껴졌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를 ‘샌드위치 세대’라고 표현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베이비부머는 여전히 부모를 부양하면서 자녀까지 책임져야 하는 세대”라며 “나이가 들어도 쉬지 못하고, 모은 돈이 없어 생활이 어려우니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 사회문제화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달리고 있다. 이제 ‘산업화의 주역’은 아닐지라도, 한 가정의 주역으로 버텨내기 위해서….  
▼ 재취업해도 절반이 임시직… 다듬고 나누고 보듬어야 ▼

중년 남성이 9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상담사에게 일자리 상담을 받고 있다. 센터는 40세 
이상 퇴직자와 퇴직 예정자에게 재취업 및 창업, 생애설계 지원 등 종합 전직지원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중년 남성이 9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상담사에게 일자리 상담을 받고 있다. 센터는 40세 이상 퇴직자와 퇴직 예정자에게 재취업 및 창업, 생애설계 지원 등 종합 전직지원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985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해 경기도의 한 연수원에서 신입 연수를 마친 정모 씨(56)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공식 출근은 오전 8시까지였지만 모든 사원이 더 일찍 나와 일했고, 밤 늦게까지 일할 때가 많았다. ‘회사가 잘되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회사일이 늘 1순위였다.

하지만 28년 후인 2013년 말 정 씨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나왔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퇴직한 정 씨는 1년여간 구직 활동을 했지만 아직도 새 직장을 찾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일거리를 찾아 서울 곳곳을 헤매고 있다.

1980년대에 이미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끝낸 네덜란드 등 선진국들은 베이비붐 세대들의 퇴직 러시를 예상하고 △일자리 나누기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충분한 대비를 갖췄다. 그러나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노후 대비는커녕 일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힘들다. 전문가들은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60세 정년을 연착륙시키는 한편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장년 일자리의 질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장년층 재취업자 10명 절반은 임시·일용직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베이비부머가 포함된 장년(50∼64세) 고용률은 69.9%(지난해 상반기 기준)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인 55∼64세 고용률(64.3%)도 한국은 34개 회원국 가운데 8위를 차지할 정도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의 질로 따져보면 장년층의 ‘고용 위기’는 심각한 상황이다. 평균 퇴직연령은 53세, 정년까지 일한 비율은 7.6%로 10명 중 1명꼴도 되지 않는다. 반면에 권고사직, 명예퇴직 등에 따른 조기 퇴직 비율은 16.9%에 이를 정도로 높다. 특히 고용부 추산 결과 2021년까지 연평균 20만 명 정도의 베이비부머가 직장을 잃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퇴직 후 어렵게 재취업을 한다고 해도 질 낮은 일자리로 갈 개연성이 높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직장에서 퇴직한 뒤 다시 일자리를 얻은 장년층 199만8000명 가운데 임시·일용직으로 재취업한 비율은 45.6%였다. 퇴직자 4명 중 1명(26.7%)은 자영업자로 나섰다. 재취업자의 월평균 임금도 184만 원으로 20년 이상 장기 근속한 근로자의 평균임금(593만 원)의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20년 넘게 근무하다가 지난해 3월 퇴직한 김모 씨(54)는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고 지난해 여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매주 6일씩 하루 12시간 이상 운전을 하지만 한 달 순소득은 150만 원 정도다. 김 씨는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도 다니고 상담도 받아봤지만 다른 일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며 “월급도 월급이지만 택시 운전사를 ‘하인’ 취급하는 손님을 태울 때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장년고용대책을 통해 △임금피크제 정부 지원 확대(1인당 연간 1080만 원) △장년층 근로시간 단축 허용 △공공일자리 확충 등을 내놨다. 그러나 장년층 일자리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 생산직종은 이미 임금피크제 도입이나 정년 연장에 합의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무직이나 중소업체에 근무하는 베이비부머들은 별다른 대책 없이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미 기업들이 정년에 가까운 근로자들 구조조정에 대거 나서고 있어 이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면 사회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수영 고용부 고령사회인력심의관은 “장년층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면 이들을 사회적 비용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버려야 한다”며 “장년층도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시간제 일자리 등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이 해답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무 준비 없이 정년만 늘어난다면 고령자 고용 부담은 물론이고 청년 일자리까지 줄어들 수 있어서다.

특히 경영계는 현재 노사 자율에 맡겨져 있는 임금피크제를 법제화하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노사 자율에 맡기면 임금 삭감을 우려한 노조의 강한 반발로 합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임금 감액률에 대한 노사 합의가 쉽지 않으므로 정부가 객관적으로 조사해 생산성과 임금에 대한 표준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더라도 기업의 부담이 크게 줄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연세대 이지만 교수(경영학)가 60세 정년 연장 시대의 기업 부담 증가율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정년 연장이 시행되면 기업 인건비가 현재보다 평균 25% 증가했고, 호봉제에 따른 자동인상분까지 반영될 경우 37.5%나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더라도 17.5%를 추가로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인건비 감소 효과가 7.5%포인트에 불과한 것. 결국 임금피크제는 물론이고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동시에 개편해야 정년 연장에 대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장기화된 저성장 국면까지 감안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증가율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임금체계 개편은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60세 정년 안착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정부, 기업, 개인이 철저히 준비해야

국가공무원으로 20년 이상 근무하다가 2000년대 중반 명예퇴직한 윤모 씨(60)는 공무원연금을 일시불로 받아 주식 투자와 자영업을 했다가 수억 원을 날렸고, 빚까지 졌다. 윤 씨는 “연금을 일시불로 받아 투자를 하는 건 정말 위험하다.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며 “매달 나눠서 조금씩 받으며 생활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정년 연장은 불가피하다. 장년, 노년층도 지속적으로 생산 활동에 참여해야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60세 정년 시대가 안착하려면 정부는 물론이고 개인과 기업도 각자 분야에서 일찌감치 대비책을 마련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개인은 정부와 기업에만 의존하지 말고 은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일단 퇴직 시점을 가정했을 때의 재무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생소한 분야에 대한 투자는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을 치료할 때 진단을 먼저 한 뒤 처방을 받는 것처럼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자세하게 파악해놔야 구체적인 은퇴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금 같은 목돈이 생겼을 때 주식, 위험 상품에 투자를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은 특히 경계해야 한다. 류재광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많은 은퇴자가 자녀 학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하다가 실패한다”며 “목돈을 가지고 뭘 한다는 생각보다는 지속적인 노후자금으로 활용한다는 인식을 갖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노동시장 구조 개선 논의에서 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네덜란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의 단초가 된 1982년 바세나르 협약(임금 동결, 노동시간 단축, 시간제 고용 확대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사정 대타협)도 뤼돌퓌스 뤼버르스 총리의 강한 리더십과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경영계가 정년 연장을 앞둔 장년층들을 무조건 해고해버리는 관행 또한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무작정 해고를 하기보다는 그들의 경험과 숙련도를 폭넓게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업들도 장년층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며 일을 할 수 있는 인사관리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장년층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ryu@donga.com·백연상·강홍구 기자
#희망퇴직#베이비붐#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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