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나미]악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욕설, 저주, 패륜, 잔혹 살인… 분노의 도가니가 돼가는 사회
권태로움은 악을 불러온다… 과거의 상처도 악마를 부른다
强-弱혼동해도 유혹에 빠진다
악에 대한 책임은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선악 분별 가르치고 끊임없이 성찰해야하는 이유다

이나미 객원논설위원
이나미 객원논설위원
최근 들어 영화들이 착해지는 이유가 혹시 현실이 너무 공포스럽게 변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만큼 끔찍한 일들이 자꾸 일상화되는 것 같다. 신문에 나오는 일은 빙산의 일각이고 과거라면 실록에 기록될 만큼 기이한 패륜 범죄와 잔혹 살인극이 넘쳐난다.

임상(臨床) 현장에서도 부모 자식이 서로 폭력을 휘두르며 고소를 하는 일은 비일비재로 만난다. 아름답게 치장한 젊은 여성이나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쌍소리는 이제 더는 낯설지 않다. 감정노동자들은 폭력배 같은 진상 손님에게 시달리고, 많은 사람들이 욕과 저주로 가득 찬 댓글 탓에 자살을 했거나 계획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감정에 치우쳐 법리를 떠나 무조건 사형시켜야 된다는 말이 TV에서 쏟아져 나온다.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관동 대지진, 중국의 문화혁명, 6·25전쟁 때도 혹시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사회가 분노의 도가니로 변할까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분노의 표현과 행위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일까.

우선은 경제적 불평등과 기회의 불균형 문제가 근원일 것이다. 신분상승은 차치하고라도 평안하고 소박한 삶의 가능성이 희박해지니 불만 세력은 당연히 늘어난다. 이라크전쟁과 팔레스타인 강점 이후 평화가 사라진 중동에서 시작된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일어나고,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필리핀 인도 중국 남미 등에서 빈발하는 강도 납치 강간 사건이 그 예다. 부자들이 자신들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부를 나눠야 하는 이유다.

심리적으로는 인간의 악마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은 악한 자와 선한 자로 나뉘어 태어나지는 않는다. 적에게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지만 때론 내 편에게는 그지없이 선한 양면을 가진 게 인간이다.

누구에게나 내재한 ‘악’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는 이유나 양상은 다양하다. 권태로운 마음은 간교하게 악을 불러온다. 아이들은 지루하면 벌레를 죽이고, 권태로운 중년은 도박 외도 사기 행각을 벌이고, 지루한 시어머니는 하다못해 장독대라도 깬다.

과거의 상처도 악마를 부른다. 폭력의 대물림이다. 학대받던 아이는 자라서 때리는 배우자나 부모가 되고,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들은 곧잘 일진이 된다. 을의 설움을 삼키던 이들이 갑이 되면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가혹한 개구리로 변한다. 한 많은 며느리 중에는 매서운 시어머니로 변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피해당한 것을 약한 대상에게 푸는 것은 악마와 다름없는 행위다. 어차피 강자와 싸워 이길 공산이 없으니 아이, 여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테러리스트의 심리다.

악함과 강함을 혼동하는 것도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길이다. 나쁜 일을 할수록 강하고 위대해 보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독재자, 연쇄 살인범, 연쇄 강간범, 연쇄 방화범, 전문적인 사기꾼들은 악한 일을 할수록 자존감과 기분이 고양된다. 전과도 교도소에선 우러러 받드는 경력이다.

무엇보다 선악을 구별하지 못한 채 사육되고 성장하는 것도 큰 이유다. 부모 학교 사회가 선악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아이들은 악한 행동을 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10억 원만 있으면 감옥에 가겠다거나, 완전범죄라면 부모나 친구 배우자를 죽일 수 있겠다는 이들을 필자는 여러 번 만났다.

마지막으로 무서운 것이 태만이다. 이 정도면 얼렁뚱땅 넘어가도 되겠지 하는 순간, 배는 가라앉고 고층건물엔 화재가 일어나고 공장은 폭발하고 비행기는 추락한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악마의 씨앗은 다양하기 때문에 일부 죄인들을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 거열형(車裂刑)을 하거나 화형을 시킨다고 지구의 악마들이 완전히 박멸되지는 않는 법이다.

기독교에서는 악마성을 하나님의 선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설명하고,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건 그 악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무 책임이 없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아니라 악을 행한 우리 자신이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우리 유전자에는 천사와 악마의 기억과 정보들이 다 새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걸음마를 하는 순진한 아이들도 음식과 장난감을 갖고 싸우다가 성질이 나면 물어뜯고 할퀸다. 훈육과 자기성찰을 통해 악마성을 버리고 천사처럼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정말로 엄정하게 선악 분별을 가르치고 있는가. 타인들의 악마성만 손가락질하면서 정작 자기 안의 악마성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나미 객원논설위원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