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치영]구조개혁, 職을 걸고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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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 차장
신치영 경제부 차장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대가는 혹독했다. IMF는 한국 정부에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요구했다. 초고금리 정책이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차입에 의존하던 기업들은 금융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잇따라 쓰러졌다. 30대 그룹 중 16개가 간판을 내렸고 2만 개 기업이 사라졌다. 1998년 9월 말에 끝난 1차 금융구조조정에서 5개 은행, 16개 종금사, 6개 증권사가 강제 퇴출됐다. 구조 개혁의 결과는 참혹했다. 100만 명이 넘는 실직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많은 가정이 해체됐고 서울역, 공원, 지하철역에는 노숙인들이 넘쳐났다.

그로부터 18년이 흘러 구조 개혁이 또다시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 당정청이 한목소리로 한국경제의 미래가 올해 구조 개혁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외환위기 때의 타율적인 개혁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 스스로 한발 앞서 과감한 개혁을 해야 한다”며 연일 구조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가 구조 개혁에 사활을 거는 건 옳은 결정이다. 한국경제는 막다른 길에 부닥쳐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혁신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좁혀 오는 중국 사이에 끼여 있다.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 중소기업이 수천 개에 이른다.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는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1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는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될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가 20년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을 한국이 정확히 20년 시차를 두고 똑같이 쫓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한 구조 개혁에 성공하려면 꼭 필요한 3가지가 있다. 강력한 의지, 리더십, 그리고 치밀한 액션플랜이다.

구조 개혁은 무척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강력한 의지 없이 성공할 수 없다. 1, 2년 내에 끝날 일도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비판의 목소리는 커질 것이다. 지역구에서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여당 의원들도 반대하고 나올 것이다. 외환위기 때 기업·금융 구조조정에 성공하고도 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 개혁에 실패한 이유는 여당 의원들이 지역구를 지키기 위해 반대한 탓이 컸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 지지 기반을 잃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

구조 개혁은 국민 모두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가능하다. 정부 혼자 할 수 없다. 가계, 중소기업, 자영업자, 근로자 등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구조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 노조 등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하고 야당의 협조도 이끌어 내야 한다. 소통의 리더십이 꼭 필요한 이유다.

정부는 공공, 노동, 교육, 금융 등 4대 분야를 구조 개혁 대상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힌 액션플랜으로 구조 개혁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금융 분야의 경우 금융회사들의 보신주의를 타파하고 사모펀드 규제를 개선해 모험자본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너무 사변(思辨)적이라 금융 개혁을 추진할 금융위원회 당국자조차 “뭐가 구조 개혁이라는 건지 우리도 잘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2003년 재정 긴축과 복지 축소, 노동 개혁 등을 담은 ‘어젠다 2010’을 추진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요즘 ‘독일을 구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당시엔 자신의 당과 국민의 반발 때문에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구조 개혁은 말잔치로만 되는 게 아니다. 정권과 직을 걸어야 한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그만큼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가.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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