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인사이드]정치인 ‘메모 DNA’는 양날의 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수첩공주… 수첩대표… 의원 주머니엔 항상 메모수첩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할 때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일제히 받아 적기 시작하자 ‘적자생존’(대통령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론이 회자됐다. 여의도 정치인 대부분에게도 이른바 ‘적기 본능’이 DNA처럼 전수된다.

정치인들의 메모는 ‘저장창고’를 만드는 행위다. 지역구 주민 등을 만날 때 존중과 경청의 의미로 대화 내용을 메모하는 것이 상식이다. 특성상 많은 사람을 만나니 대화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면담 당시 정황을 기록해 두기도 한다. 대부분 의원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휴대용 수첩이 들어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수첩 파동’ 역시 메모 습관이 ‘원인(遠因)’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 일각에서는 황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려도 될 사안 아니었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김 대표와 독대를 했다는 한 여당 의원은 “나랑 얘기할 때는 수첩에 적지 않고 책상 위에 있는 메모지에 적은 뒤 곧바로 모두 찢어버렸다”며 “보안의식이 철저하다고 생각했던 김 대표의 이번 메모 유출은 다소 의아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안이 민감한 만큼 메모를 해서 꼭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박 대통령도 10년 전 당 대표 시절부터 메모를 꼼꼼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야당이 박 대통령을 ‘수첩공주’로 공격한 이유다. 박 대통령은 보안의식도 강해 의원 시절에는 지우개가 달린 연필을 사용했다.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장에서는 뒤편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 질의응답 등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잠시 메모한 뒤 금세 지우개로 지우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정치인의 메모는 종종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여야 주요 정치인들은 이를 의식한 듯 세상에 공개될 경우 파문을 일으킬 만한 현안과 관련된 내용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습관화돼 있다.

‘대한민국 국회’ 글자가 새겨진 메모지를 자주 사용하는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보안의식이 강하다. 정국 이슈 등을 메모지에 나열한 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후 메모지를 찢어버려 ‘보안사고’가 날 싹을 원천봉쇄하는 스타일이다.

전직 당 대표인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메모가 습관이다. 누구를 만나든 수첩이나 메모지에 주요 내용을 적어 놓는다. 그는 2011년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았던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전 대표와 회동한 뒤 박 전 대표의 발언을 수첩에 적어와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수첩 대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지난해 10월 원내대표직에 오른 이후 수첩을 잘 쓰지 않는다. 국회 본회의장이나 여야 회담장에서 야당 원내 사령탑의 전략이 자칫 외부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수첩 대신에 휴대전화의 메모 기능을 이용하고 공개석상에선 절대 열어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직 대표인 안철수 의원은 휴대전화에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키워드’를 저장해 놓는다고 한다. 참모들과의 회의에선 태블릿PC에 1차 메모를 한 뒤 중요한 내용은 짧은 단어로 정리해 휴대전화에 옮기는 방식이다.

반면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수첩을 전혀 쓰지 않는다. 평소엔 볼펜만 가지고 다닌다. 당 회의에선 회의 자료에 짧은 메모를 하는 정도다. 문 위원장 측 관계자는 “최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머릿속에 기억하는 습관이 든 것 같다”고 전했다.

고성호 sungho@donga.com·배혜림 기자
#정치인 메모#수첩공주#수첩대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