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 러브 스테이지] 호불호 갈리는 선택과 집중 ‘바다가 살렸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월 15일 06시 40분


애슐리 윌크스(마이클 리 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스칼렛 오하라(오른쪽·바다 분).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바다는 ‘노래로 오열하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사진제공|쇼미디어그룹
애슐리 윌크스(마이클 리 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스칼렛 오하라(오른쪽·바다 분).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바다는 ‘노래로 오열하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사진제공|쇼미디어그룹
오하라와 버틀러의 멜로 비중 늘리는 선택
화보로 보는 ‘바람사’ 느낌 나지만 비평도
‘바다’의 소름 돋는 음색…그 자체가 드라마


‘방대한 원작소설을 얼마나 효율적이면서 효과적으로 압축할 수 있느냐’, ‘비비안 리,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1939년도 영화가 보여주었던 감성과 감동을 얼마나 무대에서 재현해낼 수 있느냐’.

이 둘에만 지나치게 속박되지 않는다면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하 바람사)’는 충분히 괜찮은 작품이었다. 전자는 ‘레미제라블’, ‘두 도시 이야기’에 미칠 수 없고 후자는 ‘프로듀서스’, ‘헤어스프레이’, ‘금발이 너무해’ 등에 모자랄지 모르지만, 적어도 ‘바람사’는 ‘바람사’만의 재미를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는 얘기다.

‘바람사’에서는 선택과 집중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느껴졌다. 스칼렛 오하라라고 하는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2시간 20분으로 압축해 풀어놓는 위험한(?) 작업을 포기한 대신 레트 버틀러와의 멜로 비중을 키웠고, 오하라의 인간적인 매력을 중점적으로 드러내는 쪽을 ‘선택’했다. 노래와 안무를 분리하는 전형적인 스타일 외에는 프랑스 뮤지컬스러운 요소들도 과감히 덜어냈다. 그리고 화려한 의상과 세트, 정교한 무대장치, 아크로배틱과 안무 등을 통해 볼거리에 ‘집중’했다.

그 결과 ‘바람사’는 마스터피스의 지점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충분히 러닝타임을 즐길 수 있는 평작 이상의 작품이 되었다.

스토리가 단절되고 구성이 엉성하다는 시선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장면 장면마다의 디테일을 살려 ‘화보로 보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느낌을 살렸다.

여기에 배우들. 이 배우들이 아니라면 ‘바람사’는 이 만큼 괜찮은 작품이 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스칼렛 오하라 역의 바다(35)는 이 작품을 위해 확실히 독을 품고 준비한 느낌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지만, ‘독’을 품으면 이런 엄청난 연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바다는 가수 중에서도 손꼽히는 노래꾼이지만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그의 연기다. 특히 노래로 연기하는 솜씨는 발군이다. 무대 위에서 어마어마한 성량을 뽐내며 관객을 압도하는 여배우들은 봤지만 노래로 오열할 수 있는 배우는 결코 흔치않다. 게다가 100명 중에 섞어놓아도 ‘한 귀’에 구별해낼 수 있는 바다의 음색은 그 자체로 드라마를 품고 있다. 아무리 밋밋한 넘버도 바다가 부르면 다르게 들리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레트 버틀러 역의 김법래(45)는 특유의 능글거림과 울림있는 저음으로 버틀러를 적절히 표현했다. 같은 역을 맡은 임태경, 주진모와 비교할 때 우열을 떠나 영화 속 클라크 게이블에 가장 가까운 버틀러라고 보면 될 듯하다.

애슐리 윌크스는 마이클 리라고 하는 배우가 지닌 엄청난 역량을 100% 보여주기에 부족한 듯해 아쉬움이 남았다. 페라리를 몰고 꽉 막힌 퇴근시간 북부간선도로를 탄 느낌이다. 멜라니 해밀튼의 유리아는 맑은 소리가 무척 좋았다.

이밖에도 박준면(마마),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박송권(노예장), 김경선(벨 와틀링) 등 모든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나무랄 데 없다.

‘바람사’의 선택과 집중에 동의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바람사’는 이들 배우들만 보러 가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특히 바다의 스칼렛 오하라는 ‘바람’이 아니라 ‘바다와 함께 사라지고’ 싶어지는 명연이다.

양형모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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