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주변에서 중심으로… 작지만 강한기업의 도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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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보다는 내실… 틈새시장서 가치 수확
불황 ‘무풍지대’ 한국형 히든챔피언 주목

#1 충북 음성군에 있는 ㈜광성텍은 산업용 고무 업계의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직원 수 130여 명의 전형적인 제조업체지만, 알고 보면 소리 없이 강하다.

1948년 서울 동대문에서 창업해 올해로 67년째를 맞은 이 회사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역사를 같이한다. 주력 제품은 금속의 강성과 고무의 탄성을 조합시킨 복합구조체인 ‘고무 롤(Roll)’. 대단할 것 없어 보이는 소모품이지만 거의 모든 산업현장에서 공정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없어서는 안 될 품목이다. 이 회사는 개당 1만 원에서 무게가 수십 t에 이르는 수천만 원짜리 고무 롤 등 다양한 제품을 연간 수백만 개 만들고 있다. ‘고무 롤 100년 기업’을 지향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 경기 안성시에 위치한 ㈜네오메디컬은 종합 클렌징 전문메이커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1994년 8월 설립된 이 회사는 20년이 지난 지금, 국내시장에 없던 친환경적인 제품을 속속 내놓으며 급성장했다. 대기업들이 주도하던 생활용품과 기능성 화장품시장에서 중소기업의 영역을 지키며 새로운 마켓을 창출했고, 틈새를 뚫었다.

비누와 치약 등 기초 생활용품에서부터 바디 케어 제품, 기능성 아토피 제품까지 다양한 품목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또는 자체 브랜드로 생산하며 지난해 5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키고 매년 매출액의 5∼6%를 연구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한 결과다.

#3 ㈜코아테크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오던 대형후판 아크릴 생산기술을 세계에서 4번째로 개발해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아크릴은 빛 투과율이 높고 가공성 및 내구성이 좋아 디스플레이, 광학렌즈, 수족관, 가구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되는 유리대용 소재다. 이 회사는 최근 순수 국내기술로 투명도가 뛰어나고 생산단가도 낮은 250mm 대형후판 아크릴 생산기술을 개발했다. 일본과 같은 아크릴 선도국도 해내지 못한 기술이다. 지난 25년간 주경야독으로 각종 외국 자료들을 공부하고 끊임없이 시도한 것이 전무후무한 기술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 회사는 여세를 몰아 올해 300∼400mm 대형 아크릴도 출시할 예정이다.

‘작지만 강한 기업’들의 질주가 매섭다. 주변에서 중심으로, 후발주자에서 선도 기업으로 도약하는 강소기업들이 불황 속에서 가치를 수확하고 있다.

산업계는 2014년 한 해 불황의 긴 터널 속에 갇혀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불황의 파고는 다수의 업체들을 부도 또는 휴폐업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일부 기업들은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내수 및 수출시장 확대를 통해 불황의 파고를 넘으며 선전하기도 했다.

정부 지원에 의존해 중소기업이라는 틀 안에 안주하려는 타성에서 과감히 벗어나 세계무대에 나선 강소기업들이다. 중소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상위 1% 강소기업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독일과 일본 등이 수많은 글로벌 위기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바로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 있는 강소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독일의 칼, 스위스의 시계, 이탈리아의 자전거, 영국의 만년필 등 세계적인 명품들도 튼튼한 강소기업의 토대 위에서 탄생했다.

작지만 강한 기업의 공통점을 보면 탄탄한 기술력으로 성장 잠재력이 뛰어나고, 틈새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한물간 업종이라도 훌륭한 경영진을 갖췄다는 점이다. 산이 높을수록 골이 깊듯 회사가 성장할수록 시련의 강도도 거셌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길을 파왔다. 기술 유출을 극도로 꺼리는 선진 업체들의 견제를 뚫어가며, 때로는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노력을 하며 경쟁력을 키웠다. 수요가 있어서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술을 선행적으로 개발해 시장 수요를 창출한 회사도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넘기 힘들 것 같던 기술·서비스 장벽을 극복하고 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머쥐었다. 경제 생태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주변에서 핵심으로 떠오른 강소기업들, 불황이 지속되면서 큰 기업보다 아름다운 ‘은둔의 강자’들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최윤호 기자 uk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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