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무명작가들의 창작 보고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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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전’

삼베로 만든 캔버스에 가는 붓으로 그린 최현석 작가의 ‘장례호상도(葬禮好喪圖)’. 조선시대 병풍 그림의 표현법과 구도를 따랐다. 장례식장 건물 밖 사람들의 어수선한 움직임부터 가족들이 오열하는 가운데 시신을 염하는 모습까지 한 폭 위에 끌어안아 치밀하게 묘사했다. OCI미술관 제공
삼베로 만든 캔버스에 가는 붓으로 그린 최현석 작가의 ‘장례호상도(葬禮好喪圖)’. 조선시대 병풍 그림의 표현법과 구도를 따랐다. 장례식장 건물 밖 사람들의 어수선한 움직임부터 가족들이 오열하는 가운데 시신을 염하는 모습까지 한 폭 위에 끌어안아 치밀하게 묘사했다. OCI미술관 제공
예술이 늘 새로움을 추구해야 할 의무나 까닭은 없다. 하지만 새로움은 잘 알려진 가치에 대한 시각을 긴장시켜 새 방향성을 일깨운다. 익숙지 않은 작가들이 매끄럽게 정리하지 않은 채 내놓은 작품을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흥미롭다.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OCI미술관에서 2월 15일까지 ‘2014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Cre8tive Report’전이 열린다. 이 미술관은 해마다 8명의 작가를 선발해 4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인천 남구 학익동의 창작스튜디오를 작업공간으로 제공한다. 작가들은 각각 40m² 정도의 공간을 쓰면서 수도와 전기료만 부담하면 된다. 작업 진척도와 결과에 따라 1년 연장 사용도 가능하다.

일정 기간의 창작활동 후 결과물을 보고하는 전시를 갖고 우승자를 정하는 몇몇 갤러리의 작가 지원 전시와 달리 경쟁 형식이 아니다. 그러나 긴장감 없이 자유롭게 만들어낸 작품을 느슨하게 열거해 놓았으리라는 예상은 틀렸다. 구획을 정했지만 작업과 생활을 위해 모든 작가들은 서로 이런저런 협력 활동을 경험해야 했다. 스타일과 표현 방법이 제각각인 이 무명작가들의 전시는 그래서인지 관람 동선(動線)을 따라 희미한 동료의식을 드러낸다.

박종호 작가의 ‘Attack’. 성나 일그러진 사내의 얼굴에서 입을 지워 빼앗아 우울한 사회의 강박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드러냈다. OCI미술관 제공
박종호 작가의 ‘Attack’. 성나 일그러진 사내의 얼굴에서 입을 지워 빼앗아 우울한 사회의 강박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드러냈다. OCI미술관 제공
4회째를 맞은 이번 그룹전시에는 주로 30, 40대 회화 작가들이 참여해 한국화, 서양화, 사진, 미디어 등 40여 점을 선보였다.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출신의 박종호 작가(43)는 불안한 구도로 일관한 인물 유채 회화를 내놓았다. 돼지를 소재로 사실적인 표현법을 추구하던 종전 스타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영기 OCI미술관 큐레이터는 “세상의 부조리에 떠밀리며 줄지어 걸어가는 무기력한 군상에 대한 환기를 도모했다”고 말했다. 가면을 벗은 여인상의 얼굴에는 눈과 코와 입이 없다. 누군가의 등을 힘껏 부둥켜안은 사내에게는 위로의 말을 건넬 입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냉소 뒤에 감춘 작가의 연민이 전해진다.

이진영 작가의 ‘Inframince’. 19세기 초 방식으로 은 감광 유제를 바른 유리 원판을 사용한 사진 작업을 선보였다.
이진영 작가의 ‘Inframince’. 19세기 초 방식으로 은 감광 유제를 바른 유리 원판을 사용한 사진 작업을 선보였다.
이웃한 최현석 작가(30)는 ‘뭘 그렇게 우울하게 늘어져 있느냐’는 듯 유머 넘치는 작품을 내걸었다. 조선 정조의 화성 행차 그림을 연상시키는 평면적 구도 안에 장례식과 결혼식 등 현대 한국의 풍습을 세세히 담은 한국화다. 고인의 영정에 절하며 애도하는 사람들, 술에 취해 화투짝을 움켜쥔 사람들, 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최근작은 예비군 훈련장의 갖가지 행태를 김홍도 신윤복의 풍속화를 따르듯 유쾌하게 묘사했다.

3층에서는 입체적인 회화 작업을 추구하는 홍정욱 작가(39)의 설치작품이 눈길을 끈다. 추상 회화를 분절하고 해체해 입체로 재구성했다. 캔버스를 이지러뜨려 확장된 틀을 형성한 뒤 선은 철사로, 면은 돌출한 목판으로 구체화했다. 아이디어를 스케치해 실물 제작을 공방 등에 맡기는 여느 설치작가와 달리 그는 모든 작업을 손수 진행한다. 치밀한 계산에 의해 해체시킨 입체가 수공을 거쳐 장식물의 가치도 얻었다. 02-734-044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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