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볼 브레이크] “틀에 얽매이지 말라”…가드명문 송도고의 철학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월 13일 06시 40분


김선형. 스포츠동아DB
김선형. 스포츠동아DB
■ 어떻게 가드사관학교가 됐나?

김동광·신기성·김승현 전설들 이어
김선형·김현중 등 KBL 명가드 성장
체력·패턴훈련보다 1대1 개인기 집중
어렵게 골넣기 등 창의적 플레이 효과

‘특급 가드의 부재’는 한국 농구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다. 국제대회에서도 상대 수비를 개인기로 따돌릴 수 있는 포인트 가드를 본지 오래다. 유재학-강동희-이상민-김승현 등 화려한 패스능력을 지닌 가드의 명맥은 사실상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유재학(모비스) 감독은 “냉정하게 말해 양동근(모비스)도 공격에선 A급이 아니다. 물론 예전 선수들이 수비 부분에선 떨어졌지만, 개인기에선 뛰어난 부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기술 농구의 침체는 경기력뿐만 아니라 흥행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가드의 창의력은 어떻게 키워지는 것일까. ‘가드 사관학교’로 불리는 송도고 출신 선수들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다.

● 송도고의 농구 철학 ‘틀에 얽매이지 말라’

송도고는 자타공인 한국 가드의 산실이다. 김동광, 강동희, 김승현, 신기성 등 왕년의 스타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포인트가드는 아니지만 이충희 역시 송도고를 졸업했다. 현역 가운데도 김선형(SK), 김현중, 안재욱(이상 동부), 김지완(전자랜드) 등이 활약하고 있다. 송도고 농구부 역사를 논할 때 고(故) 전규삼(1915∼2003년)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전 감독은 1961년부터 1996년까지 송도중·고등학교에서 무려 35년 간 지도자 생활을 하며 창의력 교육의 터를 닦았다. 그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 전통은 유산처럼 남았다. 송도고식 농구 교육의 철학을 요약하자면 ‘틀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 즐기는 농구…“쉽게 넣으면 욕먹어요.”

김지완은 “다른 팀들은 체력 훈련과 패턴 플레이에 집중했지만, 송도고는 달랐다. 1대1, 2대2 플레이가 중심이었다. 자연스럽게 개인기가 향상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런 식의 훈련 방법은 선수들에게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운동이 가능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창의력이 살아난다. 안재욱은 “3-2(공격 3명-수비 2명), 2-1 기회는 반드시 득점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통은 안전하게 득점을 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송도고는 달랐다. 쉽게 넣으면 오히려 욕을 먹었다. 최소한 비하인드 백패스, 노룩 패스, 상대수비를 붙여놓고 더블클러치 레이업 슛 정도는 해줘야 혼나지 않았다”며 웃었다. 물론 화려한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는 것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았다. 선수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 하프라인에서 원 드리블 후 더블 클러치?

송도고 출신 선수들은 재학 시절 경험한 기상천외한 훈련법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3점 라인에서 점프해 더블 클러치(김현중), 하프라인에서 원 드리블 후 더블 클러치(안재욱) 등이 그것이다. 블로킹을 피하기 위해 공을 높이 던져서 슛을 하고, 3점 라인 밖에서 장거리 훅 슛을 연마하기도 했다. 어려운 슛들도 용케도 나중엔 적중률이 높아졌다. 이는 단순히 묘기를 보여주자는 차원이 아니었다. 신체적인 핸디캡을 극복해야 하는 단신 가드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자는 취지였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훈련법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를 탄생시켰다.

● 성적 지상주의 벗어나야 창의력 향상

하지만 송도고 출신 선수들도 향후 자신이 지도자가 된 이후 이런 방식의 교육을 펼칠 수 있을 지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했다. 만약 학교가 당장의 성적에 연연한다면, 창의력 위주의 개인기 훈련에 치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농구의 젖줄인 학생 농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현중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 지도자는 물론이고 학교도 대단했던 것 같다. 학교가 눈앞의 대회 순위에 집중하기 보다는 멀리 보는 안목으로 밀어줬던 것 같다. 그래서 지도자가 마음껏 다양한 교육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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