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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메드] (시네마테라피) <호빗: 다섯 군대 전투>, ‘톨킨’의 삶 속에 녹아 있는 4가지 심리학적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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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메드] (시네마테라피) <호빗: 다섯 군대 전투>, ‘톨킨’의 삶 속에 녹아 있는 4가지 심리학적 코드

입력 2015-01-12 16:24수정 2015-01-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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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의 삶 속에 녹아 있는 4가지 심리학적 코드
<호빗: 다섯 군대 전투>

COLUMNIST 최명기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부터 <호빗: 다섯 군대 전투>까지, 그동안 쭉 이어져 왔던 중간계 6부작 시리즈가 마침내 끝났다. 후반부 세편에 해당되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2003년도에 끝난 후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다.

그러자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호빗’ 시리즈가 2012년 <호빗: 뜻밖의 여정>으로 시작해서 2013년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를 거쳐 2014년 <호빗: 다섯 군대의 전투>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호빗’ 시리즈의 마지막 장면은 ‘반지의 제왕’ 첫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원래 노인 역으로 등장한 이안 맥켈런은 호빗에서는 회색의 간달프이기에 ‘반지의 제왕’에서의 백색의 간달프보다 젊어 보여야 하지만, 세월이 흘러 백색의 간달프보다 더 늙은 회색의 간달프를 보여줬다. 엘프 레골라스 역을 맡은 올랜도 블룸(Orlando Bloom) 역시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나이에 못지않게 관객들이 놀라워한 것은 CG 기술의 발전이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당대 최고의 CG 기술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 시리즈만보더라도 2000년대 초의 CG 기술과 현재의 CG 기술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만약 지금의 그래픽 기술로 ‘반지의 제왕’을 만들었다면 대단했을 것이라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한다.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의 CG를 다시 손봤듯이 피터 잭슨도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CG를 다시 손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

그런데 도대체 톨킨의 중간계 시리즈의 어떤 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와 닫은 것이기에 이토록 긴 시간 매번 영화가 나올 때마다 성공한 것일까? 1950년대 쓰인 최고의 판타지 소설로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나니아 연대기’를 꼽는다.

‘반지의 제왕’의 저자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C.S 루이스는 한때 술도 함께 즐기던 절친이었다. C.S 루이스는 톨킨보다 먼저 전문작가로서 성공했다. C.S 루이스와 톨킨은 나중에는 사이가 틀어졌는데 작가로서 먼저 성공한 C.S 루이스에 대한 톨킨의 시기심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톨킨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C.S 루이스가 가져갔다고 의심하기도 했다. 톨킨이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둘의 사이는 더욱 벌어졌다. 그런데 그 둘의 경쟁은 죽은 후에도 계속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영화화가 되어서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과 같은 톨킨의 원작에 기반을 둔 시리즈가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 비해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필자는 그 이유가 톨킨의 소설이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한 20세기 전반부에 쓰인 다른 판타지 소설과는 차별된 코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코드를 하나씩 살펴보겠다.


① 탐욕

바그너의 ‘뉘벨룽겐의 반지’에서 신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거인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파멸을 맞이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만지는 것마다 모두 황금으로 바꾸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 마이다스 왕 역시 파멸한다.

<호빗: 다섯 군대 전투>에서는 위대한 지도자였던 소린이 노예가 된다. 관객들은 소린의 타락에 분노한다. 탐욕에 눈이 멀어서 그동안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온 동료를 의심하고, 모두를 파멸로 이끈 전쟁을 불사하는 그의 어리석음에 분노한다.

하지만 그런 절대적인 부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라고 다르게 행동할까?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이는 남을 비난하기도 쉽다. 그런데 막상 많은 것이 주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다 비슷하게 변하고는 한다. 하물며 절대반지를 통해서 ‘절대적인 힘’을 얻게 되면 그 자신을 절제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톨킨의 삶은 어떠했을까?

이른 나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톨킨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옥스퍼드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온종일 강의를 하고 밤늦게까지 시험지를 채점하며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러다 반지의 제왕이 성공하면서 톨킨은 자신이 평생 누리지 못한 넉넉한 삶을 살게 되었다. 교직을 그만두고 더 열심히 글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톨킨의 창작열은 부자가 된 후 소진되었다. 그는 그냥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으면서 부르주아적인 삶을 살다가 죽었다. 세상의 인정을 받고 안락한 삶이 보장된 후에는 그의 글 역시 멈췄다.


② 전쟁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저자 톨킨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차 세계대전은 전쟁 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한 뼘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수천, 수만 명의 병사가 죽었다. 병사들의 목숨은 장기의 졸보다도 값어치가 없었다. 병사가 죽으면 또다시 보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병사들이 참호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동안 장군들은 안락하고 안전한 후방본부에서 최고급 샴페인을 먹으면서 하인의 시중을 받았다. 때로는 사교파티도 열었다. 더는 동원할 병사가 없어지는 시점에 다다라서야 장군들은 병사들의 목숨에 조금 신경 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망자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국민들이 전쟁을 반대하게 된 것은 얼마 안 되는 최근 얘기다. 고작 베트남 전쟁부터다. 그 이전에는 전쟁에서 병사들이 죽는 것이 당연했다.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에 대해서,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 역시 당연히 죽으러 가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막상 전선에 투입되어서 직접 전투를 경험한 이들은 죽음의 공포를 직면해야 했다. 실로 잔인했다. 톨킨은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이다. 톨킨에게 있어서 전쟁은 혐오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평생을 통해서 가장 잊히지 않는, 삶의 중심이 되는 경험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톨킨의 판타지 소설에서는 전쟁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쟁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어쩌면 톨킨의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피할 수 없는 참혹한 전력전을 묘사한다. 어쩌면 반지의 제왕은 레마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서부전선 이상 없다>나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을 능가하는 반전영화다.


③ 절대악

‘반지의 제왕’도 그렇고 ‘호빗’도 그렇고 선한 이들은 그들 나름의 얼굴과 인생 역정이 있다. 즉 선한 이들은 실체를 지니고 있다. 개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악의 존재는 구체적인 모습이 없다. 다 똑같다. 악을 실천하는 이들은 모두 다 거기서 거기, 하나같이 추하게 생겼다.




선한 이들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들을 지배하는 누군가가 없다. 그래서 선은 일사불란하지 않다. 그런데 악한 이들은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맹목적으로 움직인다. 생각이라는 것이 없다.

‘반지의 제왕’에서 변절을 한 사우런의 경우 역시 누군가의 지배를 받을 뿐 자신의 의지가 아니다. 선한 이들은 악을 물리치는 데서 오는 이익이 있다. 그런데 악의 존재는 진짜 이유 없이 근본이 사악하다. 그들은 절대악이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절대악은 톨킨의 성장기 불행과 관련이 있다. 톨킨의 아버지는 은행원이었다. 아버지가 아프리카로 부임하면서 톨킨은 1892년 1월 3일에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기억도 나지 않은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에서 보내던 톨킨은 폐에 문제가 있었고 피부병과 눈병에 시달렸다.

1895년, 톨킨의 어머니는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1896년 아버지가 아프리카에서 사망하면서 톨킨은 가난하고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톨킨의 어머니는 당뇨병 환자였고 1904년 톨킨이 보는 앞에서 쇼크로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며칠 후 톨킨은 어머니마저 잃었다. 12살의 나이로 천애고아가 된 것이다.

그는 엄청난 불행에 처해졌다. 불행에 처하게 되면 누구나 이유를 찾고자 한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서 내가 불행해졌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어떤 집단의 잘못으로 인해서 내가 불행해졌다는 생각이 들면 평생 그들을 미워하게 된다.

톨킨의 불행은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행을 그나마 형상화한 것이 톨킨에게는 ‘절대악’이었다. 그러한 절대악이 영화 속에서 이글거리는 ‘악의 눈알’로 관객을 바라본다.


④ 반대중 반현대

반지의 제왕에서 선한 이들을 공격하는 오크는 모두 다 똑같이 생겼다. 오크들은 추하고 아무런 목적도 없다. 톨킨은 옥스퍼드 교수로 엘리트 사회의 일원이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은 대중사회로 이행되고 있었다. 엘리트 세력들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옥스퍼드 교수였던 톨킨은 대중에 대한 거부감이 남달랐다.

톨킨은 불행한 어린 시절로 인해서 커다란 두려움을 항상 마음속에 안고 살았다. 그런데 두려움을 해소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다. 그것을 ‘투사’라고 한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톨킨은 자신 안의 두려움을 투사할 대상으로 대중을 골랐다. 그냥 본능만이 있고 남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지배당하는 오크의 모습은 톨킨이 경멸하는 마음속 대중을 상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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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중사회는 기술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한다. ‘호빗’이나 ‘반지의 제왕’은 복고적 성향이 강한 작품이다.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역사를 원래의 방향으로 돌려놓고자 한다.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을 보고서 나무를 베면 홍수가 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계몽영화라고 누군가 쓴 인터넷 댓글을 본 적이 있었다.

실제로 톨킨은 개발주의자, 기술주의자들을 혐오했다.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는 대중을 혐오했고 그러한 대중을 위해서 새로운 물건을 계속 만들어내는 기술자들 역시 혐오했다. 그래서 그는 기술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스스로 상상해서 만들어냈다.


톨킨의 피터팬신드롬이 만든 ‘호빗’

마지막으로 ‘호빗’ 시리즈의 성공에 한몫한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 호빗과 엘프를 살펴보자.

호빗

호빗은 어른의 얼굴을 지녔지만, 몸은 아이처럼 작다. 인간은 어렸을 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남자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홈런왕이 될 것이라며 배트를 휘두르고 여자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스코리아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환상이 깨지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만화를 보면서 몰입하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황당하다는 이유로 만화를 보지 않고 예능을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환상을 포기하는 데는 그 나름의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가족의 사랑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안정된 가정환경도 필요하다.

톨킨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어 환상 속에서 자신을 위로하고는 했다. 그리고 환상에서 현실로 넘어가야 하는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래서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무의식적인 환상 속에서 위로받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볼 때는 논리적인 옥스퍼드 대학 영어교수였지만 그의 무의식은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호빗은 어른의 모습을 한 어린아이다. 바로 톨킨 자신의 모습을 호빗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엘프

엘프인 레골라스는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 톨킨은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감정이 레골라스라는 캐릭터에 이입되어 있다. 주인공들에게 신비로운 도움을 주는 갈라드리엘은 톨킨의 어머니를 상징한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돌아가셨지만 힘든 순간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등이 갈라드리엘을 통해서 형상화된다. 그리고 엘프라는 존재는 거의 영원한 수명을 지니는 것으로 나온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며 톨킨은 영원한 존재에 대한 환상을 지녔고 그것을 엘프라는 존재로 형상화했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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