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외이사도 분식회계에 책임 있다”는 대법원의 경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2일 03시 00분


상장기업 사외(社外)이사가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실질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분식회계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코스닥 상장사였다가 상장 폐지된 코어비트의 소액 투자자들이 이 회사 전현직 이사진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윤모 전 사외이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외이사의 면책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 판결이어서 파장이 작지 않다.

대법원은 “주식회사의 이사진은 대표이사와 다른 이사들의 업무 집행을 전반적으로 감시·감독할 지위에 있으며 사외이사도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 씨가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사외이사로서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음을 나타낼 뿐 ‘상당한 주의를 다했다는 사정’은 아니라고 판단한 점도 눈에 띈다. 사외이사는 경영상의 권한 못지않게 책임도 사내이사와 함께 진다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다.

코어비트는 대표이사가 2009년 비상장사 주식을 사들인 뒤 재무제표에는 약 6배의 금액을 지급했다고 기재하는 등의 방법으로 15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이듬해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됐다. 1심 재판부는 사내외 이사의 공동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2심 재판부는 “사외이사 윤 씨는 엉겁결에 사외이사로 선임됐지만 실질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윤 씨에게 면책을 인정한 것은 법리상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상장기업 사외이사들은 수천만 원의 연봉을 챙기면서도 최고경영자(CEO)의 거수기와 방패막이로 전락한 사례가 많다. KB금융의 전직 사외이사의 상당수는 납품업체 선정 압력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부패 혐의로 물의를 빚은 몇몇 공기업 사장들도 사외이사진의 비호를 받았다. 지난해 4월에는 부실한 지방 공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강원랜드 사내외 이사진에 대해 감사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손해배상 소송을 내라고 통보한 적도 있다. 상장사에서 사외이사들의 권한과 책임이 커졌음에도 제대로 역할을 안 하는 사외이사들에게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경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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