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찾아 삼만리” 재건축發 난민 쏟아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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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4구 2015년 1만6200채 예정… 본격 이주 앞둔 강동구 가보니

재건축을 앞둔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주공4단지 전경. 올해 상반기 강동구에서만 재건축을 앞두고 고덕4단지(410채)를 비롯해 약 4800채가 집을 비울 예정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재건축을 앞둔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주공4단지 전경. 올해 상반기 강동구에서만 재건축을 앞두고 고덕4단지(410채)를 비롯해 약 4800채가 집을 비울 예정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재건축 이주비를 받은 사람도 대출받을 수 있나요?”

9일 오전 10시경 서울 강동구 상일동주민센터의 전월세 상담창구로 다급히 뛰어 들어온 이모 씨(58·여)가 은행원에게 물었다. 이 씨는 “이번 달부터 이주하라는 공지를 받고 일 나가기 전에 급히 왔다”면서 “이주비가 2억 원밖에 안 나와서 전세를 구하려면 또 빚을 내야한다”고 말했다. 이 씨가 살고 있는 고덕주공4단지는 3월 말까지 집을 비우게 돼 있다.

3월 초 이주가 시작될 고덕주공2단지에 전세로 살고 있는 전순자 씨(45·여)는 “집주인한테서 3월 첫 주까지 집을 비워 달란 전화를 받고 점심도 굶어가며 전세를 찾아다니고 있다”며 “고등학생 두 아들 때문에 동네를 떠날 수 없는데 마땅한 전세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강남4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강동구 재건축아파트 주민들이 연초부터 대거 이주하면서 전세난이 확산되고 있다. 이 지역 전세난민들이 주변 수도권으로 밀려나면서 수도권의 전세금까지 들썩이고 있다.

○ 전세난민, 다세대주택으로, 경기권으로…

재건축아파트가 몰려 있는 강동구에는 이미 지난해 가을 이후 전세물량이 나오지 않고 있다. 공인중개사들은 “이미 ‘전세난 빙하기’에 들어갔다”고 표현했다. 강종록 LG공인 대표는 “연초부터 전세를 찾는 전화가 부쩍 늘었는데 전세물량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며 “두어 달간 전세를 구하던 사람들은 이제 아예 집을 사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강동구에서는 고덕4단지(410채)가 3월 말까지 이주를 끝내면 다시 고덕2단지(2771채) 이주가 예정돼 있다. 삼익그린1차(1560채)도 예상보다 빨리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다음 달부터 이주 수요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동구에서만 상반기(1∼6월)에 약 4800채가 집을 비우는 셈이다.

전세아파트를 못 구한 서민들은 반지하, 다세대주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녀들의 통학 때문에 살던 지역을 떠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상일동 제일공인중개사 염정순 대표는 “56m²(약 17평)짜리 신축 다세대주택 전세금이 최근 4개월 만에 2000만 원 뛰었다”며 “상일동에 남은 다세대주택 전세물량이 2개뿐일 정도로 전세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2년 전만 해도 이 지역 소형아파트 전세금이 450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1억 원 수준”이라며 “서민층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하니 반지하, 단칸방으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에서 밀려난 전세난민들은 경기 하남시, 구리시, 남양주시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7000만∼8000만 원 선의 전세물량은 경기도에 몰려 있다”며 “최근 경기도 전세금도 많이 올랐고 지금 추세라면 앞으로 더 오를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경기·인천지역 전세금 변동률은 지난주 0.06%로 지난해 10월 24일(0.06%)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 내 집 마련 여건 만들어야

부동산업계는 강남4구 재건축발 전세난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는 올 한 해 강남4구에서 재건축으로 짐을 싸는 집이 총 1만6200채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올해 강남4구 신규 입주량은 7313채에 불과하다. 강남구 3324채, 서초구 2795채, 송파구 964채, 강동구 230채다.

서초구에 있는 태극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안 그래도 월세가 늘면서 전세물량이 줄어드는 마당에 재건축 이주민들이 늘어나니 올해는 전세난이 유난히 심한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자녀 교육 때문에 살던 지역을 떠나지 않고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 전세금 고공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전세 세입자들이 내 집 마련으로 돌아서도록 환경을 마련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전히 만기에 대출금을 한 번에 갚는 은행 주택대출상품이 많다”며 “매월 나눠서 상환하는 대출상품을 확대해 집을 샀을 때 비용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청담역지점장은 “자산가들이 신규 아파트에 투자하도록 종합부동산세라는 대못을 뽑고 거래세를 낮추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전세#재건축#전세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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