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생각돋보기]조현아 사태와 ‘멈춤’의 미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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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to fall was too hard, too hard’(추락하지 않기는 너무 어려워, 너무 어려워). 대학 다닐 때 읽은 제임스 조이스의 어느 소설 중 한 구절이다. 소설 제목도 가물거리고 문장의 맥락도 생각나지 않지만 이 구절은 평생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은 채 오만을 경계하면서, 내 삶의 중심을 잡아 주었다. 그렇다. 인생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허약해 자칫 잘못하면 여태까지 쌓아 온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것을 피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인간관계는 얼마나 허약하고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것인가? 언제나 조심조심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려야 한다. 사물과의 관계는 또 얼마나 폭력적이고 부조리한가?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그저 단지 재수가 없어서 엄청난 재난을 당할 때가 많다. 그러니 이 허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하는 일일 뿐.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지지불태(知止不殆)라는 말도 좋아한다.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아니하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리니(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구절 속의 한 부분으로, 아마도 인간의 헛된 욕망을 경계하는 말인 듯싶다. 그러나 ‘욕망’ 대신 인간의 ‘실수’를 대입해 보면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일단 그것을 중간에서 멈출 줄 알면 크게 위험한 일은 없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멈추다(止)’라는 말이 더할 수 없이 푸근하게 다가온다. ‘멈춘다’는 것은 이미 그 앞에 어떤 행동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전제돼 있는 것이다. 이 경구는 주체인 내가 상황을 장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안도감을 주지만 모든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해 주는 것이어서 매우 인간적이다.

조현아도 멈출 줄 알았으면 위험을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자에게 겸손과 절제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힘든 것인가? 결국 사태는 끝까지 가서 개인의 몰락이요, 기업의 불운이며, 세계적인 망신으로 이어졌다. 또래의 젊은이라면 기껏해야 차장 혹은 대리가 될 나이에 거대 기업의 전무니 부사장이니 하는 직함을 가진 자매에게 때마침 ‘미생’의 드라마로 한껏 자의식이 고조된 젊은이들과 일반인들이 분노를 폭발시킨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쯤에서 우리의 자세에도 지나침이 없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항공기 항로변경죄 등의 혐의가 인정되면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그만이다. 굳이 구속수사를 결정한 것은 여론에 지나치게 영합한 것이 아닌지. 압수한 휴대전화 속의 사적인 문자 내용을 언론에 알려 대중의 적개심에 불을 붙인 검찰의 행동은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검은 머리칼에 뒤덮인 얼굴을 푹 숙이고 모여든 기자들 사이에서 떠밀리는 모습은 이미 사법 판결 전에 조리돌림이라는 사적 형벌을 받고 있는 듯하여 영 보기가 편치 않았다. 급기야 영장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날 한 시민이 욕설을 하며 그녀의 목덜미를 잡으려 하는 광경은 섬뜩했다.

사람들은 부자와 권력자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천박한 노예근성이다. 가난한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듯이 부자도 똑같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고 우리는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헤겔이 말했듯이 노예가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성실한 노동과 고귀한 영혼에 의해서이므로.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조현아#조리돌림#노예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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