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꽉막힌 마을에 분 살인광풍… 툭툭 균열이 시작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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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봄/심상대 지음/335쪽·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연재 시작합니다. 재미있다고 동네방네 광고하세요.”

심상대, 한때 마르시아스 심이라 불리길 원했던 그가 2013년 5월 장르소설이 주로 올라오는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를 시작하며 남긴 인사다. 장르는 미스터리. 광고 문구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릉도원에서 봄마다 벌어지는 집단살인. 아름다움을 탐닉했다는 이유로 화형대에 오르는 여자. 사람들은 화형에 처할 또 한 명의 남자를 찾아 나선다.”

저자는 웹소설을 다듬어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등단 25년 만에 내는 첫 장편이다. 소설 배경은 표지에 그려진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연상되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자 이름 없는 고을이다. 550여 년 전 병자사화의 참살을 피해 첩첩산중으로 숨어든 사육신 집안의 어린 오누이와 늙은 종복 12명이 세운 곳이다. 외부인 유입은 딱 두 차례뿐이었다. 자연환경이 비옥하고 풍족한 고을에선 모든 것이 공동 소유물이고 원하는 직업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고을 밖을 나가는 걸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람들은 근친혼으로 마을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유전병이 발병한다. 마을 사람들은 미남미녀로 태어나지만 절반 이상 불임이 된다. ‘정 씻기 술’을 마시면 한 해 부부로 살았던 사람에 대한 애정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과 새 출발을 하는 ‘새낭군맞이’ 풍습도 있다. 단, 함께 살다가 출산한 적이 있으면 다시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으며, 흔한 불임 탓에 아이는 온 고을 사람이 공유한다. 매해 봄 ‘이성과 재물’을 독점하고 싶어 하거나 마을 밖으로 나가려는 소망을 품는 젊은이들이 출현하는데, ‘아이와 행복’까지 공동 소유하려는 마을은 이들을 광증으로 몰아 화형시킨다.

어느 봄 이 마을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과 그의 부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생기고, 소설은 이 사건의 범인을 밝혀가는 데 플롯이 모아진다. 진범을 찾는 추리 기법의 미스터리 요소는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독자를 소설 속 낯선 세계에 묶어 둔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라는 존재를 전체를 위한 하나의 부속물로 취급하려는 마을에 균열을 내려는 소년이 등장한다. 이 소년의 광증은 ‘관념적이고 현학적’이다. 가족 관계를 터부시하는 고을에서 소년은 ‘나를 낳은 여자와 함께 나를 낳도록 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을 입에 올리며 ‘나’가 누구인지 탐구한다.

저자는 “결핍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사는 소설 밖 현실 세계에도 균열을 낸다. 한 번 읽어보라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싶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나쁜봄#심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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