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5만마리에 관찰 발찌… 다시 발견된 건 딱 세마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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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스케치]철새 이동경로 추적하는 흑산도의 연구원들

(맨 위쪽부터)[1]철새연구센터 박창욱 연구원이 센터 인근 배낭기 미습지에서 그물에 걸린 새를 빼내고 있다. [2]포획한 새의 발목에 이동경로 추적용 가락지를 채우는 모습. 검지와 중지 사이로 머리가 나오도록 가볍게 새를 쥐어야 한다. [3]새의 무게를 측정하는 장면. 무게를 재는 동안 새가 날아가지 않도록 작은 종이 봉투에 담아 저울에 올린다. [4]철새연구센터 전경. 창문에 새들이 날아와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해 맹조류인 독수리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흑산도=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맨 위쪽부터)[1]철새연구센터 박창욱 연구원이 센터 인근 배낭기 미습지에서 그물에 걸린 새를 빼내고 있다. [2]포획한 새의 발목에 이동경로 추적용 가락지를 채우는 모습. 검지와 중지 사이로 머리가 나오도록 가볍게 새를 쥐어야 한다. [3]새의 무게를 측정하는 장면. 무게를 재는 동안 새가 날아가지 않도록 작은 종이 봉투에 담아 저울에 올린다. [4]철새연구센터 전경. 창문에 새들이 날아와 부딪히는 것을 막기 위해 맹조류인 독수리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흑산도=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해마다 어딘가로 수천 통의 편지를 몇 년째 보내고 있다. 하지만 답장 한 통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계속 편지를 쓰고 있다면….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편지를 받게 될 상대방이든, 편지를 쓰는 행위 자체든, 뭔가에 미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 흑산도에 있는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 여기서 일하는 연구원들이 그래 보인다. 지난 한 해 동안 센터 연구원들이 이동경로 추적 등을 위해 발목에 가락지를 채워 날린 새는 모두 6166마리. 이동경로를 확인하려면 가락지를 찬 새를 누군가가 다시 발견해 센터에 알려야 한다. 지난해 6166마리 중 몇 마리나 발견됐을까. 딱 한 마리다. 가락지를 채워 날린 새가 다른 지역에서 다시 발견되는 것을 철새 연구가들은 ‘회수’라 부른다. 지난해 회수율은 0.016%. 그나마 2010년 이후 4년 만의 회수였다. 2005년 문을 연 센터는 지금까지 227종 5만751마리에 가락지를 채웠다. 이 중 다시 발견된 건 겨우 세 마리. 두 마리는 대만에서, 한 마리는 일본에서 다시 포착됐다.

철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철새연구센터에서 사용하는 알루미늄 재질의 가락지는 크기별로 모두 15가지. 먼 거리에서도 개체 식별이 잘되는 컬러 가락지를 쓰는 나라도 있지만 컬러 가락지는 천적의 눈에도 쉽게 띄는 단점이 있다.
철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철새연구센터에서 사용하는 알루미늄 재질의 가락지는 크기별로 모두 15가지. 먼 거리에서도 개체 식별이 잘되는 컬러 가락지를 쓰는 나라도 있지만 컬러 가락지는 천적의 눈에도 쉽게 띄는 단점이 있다.
아직도 가락지로?

화성까지 무인 탐사선이 날아가고, 무인 자동차의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온 세상이다. 그런데 아직도 가락지로 철새 이동경로를 연구한다고? 철새의 이동경로 추적에는 정확도가 높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나 레이더가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GPS 기기를 활용한 추적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많게는 1000만 원 가까이 하는 것도 있다. 게다가 크기가 작은 새들에게는 GPS 기기를 채우기가 어렵다. 흑산도를 찾는 철새의 대부분은 무게가 수십 g 정도인 참새목의 소형 산새류. 레이더는 기러기처럼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새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데 주로 쓰인다. 추적 범위에도 한계가 있다.

이런 제약 때문에 조류 이동경로 확인 목적으로는 1899년 덴마크에서 처음 사용된 가락지 부착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4년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한 대학이 철새의 질병 조사를 위해 가락지를 처음 부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K.P.O BOX 1184 SEOUL KOREA OOO-OOOOO.’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가락지에 새겨진 표지다. ‘K.P.O BOX 1184’는 서울 광화문우체국 사서함 번호. 뒤에 오는 8개의 숫자 중 앞의 세 자리는 가락지의 크기를 나타낸다. 뒤의 다섯 자리는 가락지를 찬 새의 고유 식별번호다. 센터에서는 크기가 다른 15가지의 알루미늄 가락지를 사용한다. 가장 작은 것(010)은 새 발목에 채웠을 때의 지름이 2mm, 높이 5.8mm, 무게 0.04g. 오목눈이, 굴뚝새, 숲새 등에 이것을 채운다. 가장 큰 것(150)은 지름 26mm, 높이 8.8mm 무게 4.6g으로 두루미와 고니류 등이 가장 큰 가락지를 찬다.

회수의 기쁨

10년간 가락지를 채워 날려 보낸 새가 5만751마리. 그중 딱 세 마리만 다시 발견됐다. 확률 0.006%의 행운. 누가 누렸을까. “제가 직접 가락지를 채운 새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동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이런 행운을 벌써 누려도 되나 싶었죠. 그동안 선배들이 수없이 많은 가락지를 채웠을 텐데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2008년 3월 센터에 들어와 2010년 3월부터 가락지를 부착하기 시작한 조숙영 연구원(30). 그는 가락지 부착 두 달 만에 그렇게 어렵다는 회수의 기쁨을 누렸다. 조 연구원이 2010년 4월 11일 가락지를 채운 검은지빠귀가 28일 뒤인 5월 9일 1244km 떨어진 일본 시즈오카 현에서 발견됐다. 센터로서는 2008년 10월 이후 두 번째 회수.

평생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들다는 회수의 행운을 조 연구원은 두 번이나 누렸다. 그가 지난해 8월 27일 가락지를 채워 날려 보낸 바다직박구리가 다시 발견된 것. 이번에는 34일 만인 9월 30일 1114km 떨어진 대만 신베이에서 바다직박구리의 모습이 포착됐다. 이때의 발견으로 그동안 바닷가에 서식하는 텃새로 알려져 있던 바다직박구리 중 일부는 철새처럼 먼 거리 이동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번째 발견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 이 일이 나에게는 운명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이 일을 하고 살라는 누군가의 계시 같기도 했고요.”

센터에서 가락지를 채운 새가 다른 나라에서 발견된 건 세 번뿐인데, 일본에서 가락지를 차고 날아온 새를 센터가 발견한 건 14번이나 된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센터가 가락지 찬 새를 찾는 기술이 일본보다 뛰어난 것일까? 일본이 가락지를 채우는 새의 숫자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센터가 그동안 가락지를 채운 새는 한 해 평균 5000마리 정도. 한 해 우리나라 전체에서 가락지를 채우는 새의 80% 정도다. 나머지는 일부 대학 등에서 연구 목적으로 가락지를 채우기도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센터처럼 가락지를 전문적으로 부착하는 곳이 전국에 60곳이 넘는다. 여기서 연간 약 20만 마리의 새가 가락지를 찬다. 미국은 연간 100만 마리 이상 가락지를 채우지만 우리나라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인지 미국에서 날아온 새가 국내에서 발견된 적은 없다. 가장 멀리서 날아온 새는 2006년 호주에서 가락지를 채운 붉은어깨도요. 5839km를 날아와 2011년 4월 흑산도에서 모습이 확인됐다.

철새연구센터는 흑산도와 홍도에서의 조류 모니터링으로 미기록종 16종을 발견하는 성과를 냈다. 미기록종은 국내에서 한 번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종이다. 2006년 홍도에서 발견된 미기록종 꼬까울새. 철새연구센터 제공
철새연구센터는 흑산도와 홍도에서의 조류 모니터링으로 미기록종 16종을 발견하는 성과를 냈다. 미기록종은 국내에서 한 번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종이다. 2006년 홍도에서 발견된 미기록종 꼬까울새. 철새연구센터 제공
가락지를 채우기까지

새는 그물을 쳐서 잡는다.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아주 가는 실로 짜인 그물이다. 그래서 ‘안개그물’로 불린다. 센터에서 차로 3분 거리인 배낭기미습지에 그물이 설치돼 있다. 먹이원이 많은 습지에 새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물은 해 뜨기 직전에 펴고, 낮 12시가 되면 걷는다. 햇볕이 강한 한낮에 새가 그물에 걸린 채 긴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1시간에 한 번씩 그물을 둘러보고 걸려든 새를 빼낸다. 철새뿐 아니라 박새나 흰배지빠귀 같은 텃새도 걸린다. 박새는 성깔이 있어 저항이 심하고 부리로 연구원들을 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그물에 매달린 걸 보고도 연구원들이 서로 미루는 새가 박새다. 새가 많이 잡힐 때는 하루에 200마리를 넘기도 한다.

그물에서 새를 빼낸 뒤로는 최대한 빨리 가락지를 채워 다시 날려 보내야 한다. 그래야 새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박창욱 연구원(33)이 새의 암수와 나이를 확인하고 날개 및 부리와 몸길이, 무게, 지방량 등을 측정한 뒤 가락지를 채워 다시 날려 보내기까지는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단순히 가락지만 채우는 것이 아니다. 새의 건강과 발육 상태 등을 함께 확인해서 가락지 고유 식별번호와 함께 기록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에서는 가락지 부착 자격증 제도를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자격증 제도가 없다.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센터에서 가락지를 채우는 시기는 3∼5월과 9∼11월로 1년에 6개월 정도. 따뜻한 동남아시아나 대만, 중국 남동부 지역 등에서 겨울을 나고 러시아 연해주나 일본 홋카이도 등지로 북상하는 철새들이 3∼5월에 흑산도에 잠시 머문다. 반대의 경우에는 9∼11월에 철새들이 흑산도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날개를 편다. 센터는 이 시기에 흑산도를 경유하는 철새들을 붙잡아 가락지를 채우는 것이다.

흑산도는 서해 어청도와 함께 우리나라 섬 중에서 가장 많은 종의 철새들이 찾는 곳으로 꼽힌다. 수백∼수천 km의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하는 철새들이 체력을 정비하는 중간 기착지인 셈이다. 이렇게 짧게는 하루이틀, 길면 일주일가량 머물다 떠나는 새를 철새 중에서도 특히 ‘나그네새’라 부른다. 흑산도에서 여름이나 겨울을 보내는 여름철새, 겨울철새는 아니라는 얘기다. 한반도에서 관찰되는 500여 종의 새 중 나그네새가 140종 정도로 가장 많다. 겨울철새가 약 120종, 여름철새 70종, 텃새 60종이다. 나머지는 길 잃은 새다.

가락지를 채우는 시기가 아니라도 센터에서는 하는 일이 많다. 흑산도 텃새 등을 365일 모니터링한다. 미기록종도 찾아 나선다. 미기록종은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된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종이다. 센터는 개소 후 지금까지 꼬까울새, 귤빛지빠귀, 긴다리사막딱새 등 16종의 미기록종을 발견했다.

‘5만 마리 중 3마리 회수면 좀 무모한 작업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권영수 센터장(46)은“몸집이 작은 산새류에 대한 가락지 부착은 세계적으로 봐도 회수율이 낮다”며 “꼭 회수되기를 바라고 가락지를 채우는 건 아니다”고 했다. 언제쯤 어떤 새가 흑산도를 찾아와 얼마나 머물다 가는지, 예년보다 빨리 오는지 늦게 오는지, 질병은 없는지 등의 생태를 조사하기 위해 새를 포획하고 포획한 새를 다시 놓아주면서 가락지를 채우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는 것. 개설 10주년을 맞은 올해 센터는 몇 통의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흑산도=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철새#이동경로#흑산도#꼬까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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