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기 잘 이겨내준 대견한 후배들” 눈물의 단원고 졸업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9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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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로 수학여행을 가던 2학년 학생 325명 중 246명이 희생된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9일 오전 10시 20분경 37명의 단원고 2학년 여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강당 대기실에서 숨죽여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렸다.

“2학년 재학생들이 3학년 선배들을 위해 준비한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원래 40명이 참여해 준비한 무대였지만 3자리는 비어 있었다. 잠시 침묵. 무대에 선 한 학생은 곧장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다시 박수와 함성. 이윽고 피아노 반주.

“이생에 못 다한 사랑 이생에 못한 인연. 먼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세월호에 탔다가 살아남은 학생들의 입에서 가수 이선희의 ‘인연’이 흘러나오자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은 눈가로 손을 가져갔다. 노래하던 생존 학생들은 중간 중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사람들과 카메라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이어 뮤지컬 그리스 수록곡 ‘We go together’에 맞춰 노래와 율동을 선보인 뒤 ‘졸업축하해요♡’라는 팻말을 들어올리자 3학년 졸업생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후배이자 동생들의 무대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단원고의 졸업식은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학생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참사를 직접 겪은 2학년 생존학생들과 단원고 재학생으로서 함께 고통 받았던 3학년 학생 모두 감사와 격려를 주고받았다. 졸업식에서 재학생 송사를 읽은 2학년 12반 최민지 양은 “모두가 슬픔에 주저앉았던 봄,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덕분에 거센 파도 같았던 올해 봄을 견뎌낼 수 있었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졸업생 대표 오규원 군은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준 대견한 후배들이 있었다”며 화답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단원고’라는 꼬리표를 걱정했다. 한 교사는 “이 아이들도 힘든 시기를 겪으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몰려든 취재진에게 “이럴 때만 찾아온다” “카메라 꼴보기도 싫다”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학생도 있었다. 정치권이 학생이나 학부모가 바라지도 않은 특례입학이 세월호 특별법에 언급된 것에 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세월호 희생 학생의 유가족이자 이번 졸업생을 둔 한 어머니는 졸업식 축사에서 “단원고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여기고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2학년 남학생 17명이 마지막으로 가수 인순이의 ‘아버지’를 부른 뒤 큰 소리로 “졸업 축하합니다!”라고 외치며 무대를 뛰어나가는 것을 끝으로 졸업식은 마무리됐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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