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아버지 공부’ 더 늦기전에 꼭 해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10일 창립 20주년 맞는 두란노아버지학교 김성묵 상임이사

김성묵 두란노아버지학교 상임이사는 스스로 아버지학교의 가장 큰 수혜자임을 자처한다.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고 묻자 그는 “아버지는 모든 관계의 ‘뿌리’”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성묵 두란노아버지학교 상임이사는 스스로 아버지학교의 가장 큰 수혜자임을 자처한다.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고 묻자 그는 “아버지는 모든 관계의 ‘뿌리’”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가정을 회복시키는 사역 한번 해 보시죠.”(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

“예, 알았습니다.”

그는 1991년 처음 만난 하용조 목사의 난데없는 말에 알았다고 했지만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그의 결혼생활은 ‘목숨’만 겨우 붙어 있었다. 창피해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사연을 얘기했더니 이혼을 결심하고 있던 아내는 “당신, 집에서 보는 것도 싫은데 교회에서까지 봐야 하냐”며 거절했다. 두 아들 덕분인지 갈라서는 위기는 넘겼다. 이때부터 남편은 부부 프로그램과 외국에서 온 목회자의 강의를 들으며 아버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10일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를 갖는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 김성묵 상임이사(67)의 사연이다. 1995년 시작된 두란노아버지학교 1기 수료생인 김 이사는 평신자로 이 단체를 이끌어왔다.

5일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감출 것도 없다는 듯 개인사를 고백했다. 항공화물 유통업체를 경영하던 그는 바쁜 일과 사회 분위기를 핑계로 가정은 뒷전이었다. 돈 벌어다 주고, 밥 안 굶기면 된 것 아니냐는 그런 남편, 아빠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아버지의 위기’가 본격화했다. “저처럼 어깨에 힘주고 살던 남자들이 추풍낙엽 신세가 됐어요. ‘아버지’란 소설이 큰 인기를 얻었죠. 30명을 채우기 힘들던 아버지학교 입학생이 쉽게 80명, 100명을 넘었으니까요.”

아버지학교는 돈 버는 것보다 재미있는 새로운 길이자 인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시험이 찾아왔다. 2002년 대장암 3기 선고를 받았다. 2년 뒤 100명이 넘던 직원을 20명까지 줄였다가 결국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했다.

김 이사는 이 대목에 이르자 참 묘하다는 듯 두 사람의 얘기를 꺼냈다. 하나는 “암 한 번 걸려보는 것도 괜찮다”는 하 목사의 말이다. 하 목사 역시 간암으로 투병 중인 때였다. 또 하나는 “아무리 아버지학교가 중요하지만 가족 같은 직원들은 챙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한 직원의 하소연이다.

“그 뒤 삶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떠오르는 말들입니다. 투병 중인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돌아가신 하 목사께서 왜 그런 말을 했나, 살다 보니 저도 이해가 갑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슬로건 아래 진행된 이 학교는 4, 5주간의 일정으로 아버지의 영향력과 남성(문화), 사명, 영성 등을 주제로 참여자가 편지를 쓰고 고백하는 등 참여형으로 진행된다.

지난 20년 동안 아버지학교 수료 인원은 30만 명에 이른다. 2000년에는 어머니학교가 생겼고, 2004년에는 개신교 신자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열린아버지학교’가 생겼다. 특히 열린아버지학교는 기업과 관공서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과 노숙인, 재소자를 위한 학교로 확대됐다. 61개국 247개 도시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스스로 아버지학교의 가장 큰 수혜자임을 자처하는 그는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마음을 담아 조언했다. “아버지는 모든 관계의 ‘뿌리’입니다. ‘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는다’고 다짐했던 많은 남성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가 되기 위한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