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언론사 테러]살해 대상 언론인 한명씩 호명하며 총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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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의 5분’ 재구성



에펠탑에서 5∼6km 떨어진 프랑스 파리 11구에 있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본사 부근에 검은색 시트로엥 C3 해치백 차량이 도착한 시각은 7일 오전 11시 30분경(현지 시간). 1명은 차에 남고 2명은 차에서 내렸다. 2명의 손에는 러시아제 칼라시니코프 소총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1층에서 조우한 건물 관리 직원에게 잡지사 위치를 물어본 뒤 “2층”이라는 답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총을 쏴 그를 죽였다. 테러범들은 2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만평작가인 코린 레 씨가 어린 딸을 보육원에서 데리고 돌아오다 범인과 마주쳤다. 레 씨는 “마스크를 쓰고 무장한 두 명이 잔인하게 협박해 포기하는 심정으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고 프랑스 신문 뤼마니테에 말했다.

테러범들은 이내 수요일마다 편집회의가 열리고 있는 뉴스룸으로 쳐들어갔다. 편집장 겸 만평가인 스테판 샤르보니에 씨는 알카에다의 살해 협박을 수차례 받았던 인물로 당시 점심식사를 겸해 주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테러범들은 사람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세우고 주머니에서 처형 대상 명단을 꺼내 한 명씩 호명한 뒤 바로 쏴 죽였다. 유창하면서도 악센트가 없는 프랑스어로 “신은 위대하다”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생존자들을 치료한 의사 제랄드 키에르제크 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테러범들은 총을 난사한 게 아니라 희생자들을 처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뉴스룸에서만 10명이 죽었다. 샤르보니에 씨의 경호를 맡고 있던 경찰관 1명도 포함됐다. 한 목격자는 AP통신에 “그들이 너무 체계적이라 처음에는 프랑스 반테러 정예요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훈련을 받은 바 있는 토니 섀퍼 전 미 육군 중령은 “테러범들은 굉장히 전문적이고 조직적으로 보인다. 군사훈련 없이는 이런 잘 짜인 각본 같은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그동안에도 무슬림 비판 만평을 자주 실어 심각한 테러 위협을 받아 현지 경찰이 주위를 감시했다. 하지만 “프랑스 경찰도 건물 내부에까지 무장 괴한들이 들어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단 5분 만에 임무를 마친 테러범들은 대기 중인 차에 올라타고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3차례 총격전을 벌였다. 총에 맞아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경찰관을 향해 총구를 머리 부근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잔혹함을 보였다. 희생자가 총 12명으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인근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도주하던 테러범들은 포르트드팡탱 지하철역 부근에서 차를 빼앗아 갈아타고 달아났다. 놀란 시민들에게는 “예멘의 알카에다가 저지른 일이라고 언론에 알려라”고 말하는 등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경찰은 테러범들이 도주 차량에 흘린 신분증으로 용의자를 특정하고 프랑스 동북부 도시 랭스 일대에서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펼쳤지만 달아난 이들의 행방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프랑스 언론사 테러#테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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