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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359>그 사람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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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359>그 사람을 가졌는가

황인숙 시인입력 2015-01-09 03:00수정 2015-01-23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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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1901~1989)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救命帶)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주요기사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출판인이며 저술가며 논객이었던 함석헌 선생은 식민지 시절에는 독립운동가이며 시민사회운동가였고, 제3공화국 이후 민권운동의 앞에 섰다. 그의 호는 신천(信天), 씨ㅱ, 바보새인데 삶에 대한 철학과 자세가 엿보인다. ‘씨알’은 ‘번식을 위한 알, 종자(種子)로서의 낱알’이다. 종내 제 몸이 사라지고 거기 자손이 번성하는 씨알. 모든 개체들이 저 하나만을 지키려 한다면 미래는 없으리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려면 많은 이의 제 삶을 ‘씨알’로 삼는 각오가 필요하리라. 선생은 사람들에게 ‘씨알’로서의 각성을 독려하는 ‘씨ㅱ 사상’을 설파했다. ‘씨ㅱ 사상’은 대한민국의 다난한 역사 속에서 무교회주의를 주창한 종교인, 비폭력주의를 신조로 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가, 사상가 등으로 산 그의 삶의 이력의 점철이기도 하다. 선생의 널리 알려진 저서로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있다.

이 시가 실린 함석헌 시집 ‘수평선 너머’ 초판은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발간됐다. 피식민지 시절, 광복 직후 혼란기와 전쟁으로 이어진 어지러운 시절, 특히 세상의 ‘씨알’이 되고자 한 의인(義人)의 삶이란 자신의 생명은 물론이고 처자의 안위마저 팽개쳐야 하는 아슬아슬하고 외로운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숭고한 길을 가는 이뿐 아니라 일반 소시민에게도, 시절을 불문하고 마음속에 그릴 ‘그 사람’. 시인은 애타게 그 귀인을 부른다. 세상을 향해, 그리고 자기를 향해.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인가….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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