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천영우]2015년 북한 정책의 중심을 잡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최고위급회담 못할 이유 없다’… 김정은 신년사에 들뜬 정부
벼랑끝 北이 기댈곳은 남한뿐… 대화 재개에 목숨 걸지 말라
조급증 보이면 北오판 불러
국제공조도 긴밀하게 유지… 北시간벌기에 이용되지 말아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천영우 객원논설위원·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정초부터 남북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작년 12월 29일 통일준비위원회 명의의 남북회담 제의에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 데 대해 통일부는 자못 들떠 있는 듯하다.

김정은이 이 시점에 남북회담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이 처한 상황과 생존전략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김정은으로선 지난 3년간 천신만고 끝에 급박한 대내적 도전을 간신히 수습하고 당정군(黨政軍)을 아우르는 최고지도자로서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앞날은 여전히 암울하다. 김일성 왕조의 종묘사직을 보전하려면 핵, 경제 병진정책에서 성공을 거두어 안보와 민생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동시에 간부들의 충성심과 인민의 ‘김일성교’에 대한 흔들리는 신앙심을 다잡는 게 관건이다. 이를 위한 최우선 과제는 핵 능력을 증강하지 않는 조건으로 6자회담에 복귀해 제재 해제와 함께 미북 관계에 돌파구를 여는 것이다.

이런 속셈으로 미국과 흥정을 시도해 보았으나 핵 보유를 정당화하면서 체제 안전까지 보장받겠다는 술책에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북 제재 강화의 명분만 제공하고 말았다. 납북 피해자 재조사 카드로 일본에 추파를 던져 보았으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러시아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경제 파탄의 벼랑에 몰린 러시아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북한에 남은 마지막 카드는 남한에 손을 내미는 것밖에 없다. 미국이 괴롭히고 중국이 외면해도 남한만 포용해주면 살아날 희망은 있다. 핵무기를 열심히 만들고 가끔 도발해도 대화에 응해주는 것만으로도 감동하고 병진정책 성공에 필요한 지원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마침 남한이 대화를 애원해오니 체면 구기지 않고 선심까지 쓰면서 뜻을 이룰 수 있게 됐다. 미국이 고강도 제재로 압박해도 남한이 5·24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만 실현하면 재원 조달에 숨통이 트인다.

이보다 더 급박한 것은 남한에서 유입되는 북한체제와 외부 세계의 진실을 막아내는 것이다. 진실은 김일성 왕조의 정치·사상적 근간을 흔드는 ‘바이러스’다. 핵, 경제 병진정책이 성공하더라도 이를 막지 못하면 김정은 체제의 미래는 없다. 설사 5·24조치를 해제하지 못하더라도 대북 심리전만이라도 중단시킬 수 있다면 정상회담을 몇 번인들 못할 이유가 없다.

남북이 처한 이 같은 상황에 비추어 동상이몽(同床異夢)이긴 해도 대화는 재개될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대북정책의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가 유의해야 할 사항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북한 중심적 세계관을 버리고 남북대화에 목숨 걸지 말라. 대한민국이 승승장구하는데 북한에 신세 질 일이 없지만 북한은 우리 도움 없이는 살아남기도 어렵다. 우리 정부가 대화를 구걸할 이유도 없고 대화에 응해온다고 흥분할 것도 없다. 대화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북한은 박근혜 정부가 국내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대화 재개 자체에 터무니없는 값을 요구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둘째, 북한의 제안에 대응하는 템포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어떤 협상이든 시간에 쫓기고 조급한 쪽이 손해를 보는 법이다. 우리 입장을 이미 결정해 놓았더라도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이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와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토론하는 절차를 거치는 여유는 보여야 한다. 비상시가 아닌데도 허겁지겁 공휴일에 회답하는 것은 조급증의 극치를 보여준다. 북의 회답을 자꾸 독촉하는 것도 북한의 몸값만 높여줄 뿐이다.

셋째, 남북 간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둬야 하지만 대화는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과 과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이 어려운 게 아니라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정상회담, 우리의 정책목표에 기여하는 정상회담이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북한의 평화 파괴 능력과 의지를 감소시키고,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촉진하고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끝으로 국제공조 체제에서 이탈하지 말라.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나오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계속 강화될 수밖에 없다. 남북회담의 결과로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고 비핵화 압력에 버틸 체력을 키워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한국이 한미 공조를 앞장서서 파괴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고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국가안보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