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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중현]엘리트 공무원들, 마음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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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중현]엘리트 공무원들, 마음이 떠난다

박중현기자 입력 2015-01-07 03:00수정 2015-01-07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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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경제부장
“당장 나부터 물러나니 대책이 없는데 능력 있는 후배한테 끝까지 남으라고 뜯어말릴 수 있겠어요?” 최근 공직을 떠난 전직 고위관료는 해외 파견근무를 마치고 복귀할 예정인 후배의 전화를 받고 착잡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 후배는 평소 존경하던 선배에게 “요즘 같은 공직사회 분위기에서 돌아가는 게 맞는지, 조금이라도 젊을 때 민간으로 자리를 옮겨 ‘제값’을 받는 게 나은지 모르겠다”며 구구절절한 e메일을 써보냈다.

공직생활을 계속할지 저울질하고 있는 후배는 오래전부터 위아래에서 ‘언젠간 장관이 될 사람’이란 평가를 받아온 에이스 관료다. 2000년대 중반 이 부처에 출입할 때 이익집단 간 갈등으로 얽히고설킨 문제를 그가 창조적 대안을 내 푸는 걸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예전 같으면 후배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면 선배 관료들이 나서서 “부처의 미래를 책임질 네가 뭔 말이냐”라며 호통부터 쳤겠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2014년은 한국의 엘리트 공무원들에게 잔인한 해였다. 작년 4월 터진 세월호 사고는 ‘관피아’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그들의 미래를 바꿔 놨다. 현직일 때 챙기지 못한 혜택을 은퇴 후 공공기관 등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보상받는 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관피아 방지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올해부터 2급 이상 공무원이 맡았던 업무와 관련 있는 직장에 은퇴 후 취업할 수 없는 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늘었다. 50대 중후반에 옷을 벗는 고위 공직자에게 3년 공백은 길다. 지난해 말 현직을 떠난 한 최고위 공무원은 “해가 바뀌기 전에 ‘잘라 줘서’ 놀아야 할 시간을 1년 줄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삼성그룹 출신 인사전문가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얼마 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위공무원 스카우트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1, 2급 고위공무원을 장관이 추천하도록 하고 보수도 장관과 인사혁신처장이 협의해서 정해 공직에도 과감한 스카우트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든 민간의 인재들을 공직사회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고민이 읽힌다. 다만 그의 생각이 ‘산토끼’ 잡는 데 주로 집중돼 있고 ‘집토끼’를 고려한 내용은 적다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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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구조조정의 폐해가 있다. 조직이 불안정해지면 핵심 인재들의 마음이 먼저 떠난다는 점이다. 민간인재 스카우트도 욕심처럼 안 될 공산이 크다. 민간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인재들은 연봉 1억 원이 채 안 되는 1, 2급 공무원의 보상 수준을 웬만큼 높인다 해도 공직에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게다가 공직에 발을 들이면 나갈 때 3년을 놀아야 한다. 그래서 경쟁력이 부족하거나 ‘갑(甲)의 자리’에 욕심 있는 사람들이 개방되는 공직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실상이 드러난 전현직 공무원들의 일탈과 모럴해저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 있고, 양심적인 공무원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와 경제의 핵심 경쟁력이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수십, 수백조 원의 세금을 써가며 키워낸 국가적 자산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노동 분야의 구조개혁을 추진하며 직무성과급제의 확산을 꾀할 계획이다. 공직사회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놀고먹는 공무원에게 국민의 세금이 허비돼선 안 되지만 최고의 능력을 갖춘 공무원들에겐 그 책임과 실적에 걸맞은 보상이 따라야 한다. 엘리트 공무원들의 떠나는 마음을 붙잡고 기(氣)를 살려줄 방안이 필요하다.

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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