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영어로 익히는 고전]야성의 부름 ⑤ 회귀본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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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에서 벅은 종종 어떤 소리를 듣게 됩니다. 유콘 숲 속 멀리에서(distant in the forests of the Yukon) 늑대의 울음소리가(the cry of the wolf) 들려오죠. 모든 개에게는 늑대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벅도 예외는 아니죠. 벅은 이 울음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 느낍니다(When Buck hears this cry, he feels it calling him). 그의 조상들(ancestors)은 물론이고 사람과 문명이 시작되기 전의 시간이 그를 부른다고 생각하죠. 그것은 벅을 부르는 야성의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소리를 들었을 때 벅은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compelling urge) 느낍니다.

하지만 벅에게는 친구들과 해야 할 일들(duties)이 있고, 그에게 익숙한 삶이(his familiar life) 바로 이곳에 존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throw it all away) 야생으로 돌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토끼를 쫓고(chasing rabbits), 숲을 뛰어다니고(running through the woods), 밤에는 서늘한 산들바람과 함께 잠들고(sleeping with the cool breeze of night) 아침엔 환한 태양 아래서 눈뜨는 상상들을 하는 순간 그는 금세 우울해지고 맙니다. 이 야성의 부름은 벅이 거부하기엔 너무나 벅찹니다(too much for Buck to resist). 그리고 때때로 그는 이 야성을 자신에게서 느낍니다. 다른 개가 벅에게 달려들면 벅은 맹렬하게(ferocious) 돌변하죠. 다른 개들과 사냥을 할 때도 그의 야성은 느껴집니다. 사냥감(prey)에게 가까워지면 불타는 듯한 숨소리(fiery breath)를 느끼고 말죠.

‘야성의 부름’에서 벅은 폭력을 통해 자신의 야성의 본능을 깨닫습니다(Buck realizes his wildness through violence). 다른 개들이나 늑대들과 싸우면서, 또 다른 동물을 먹기 위해 사냥하면서 그의 본능을 깨닫죠. 그렇다면 법이 있고 문명(civilization)이 있는 인간은 어떨까요? 우리 역시 여전히 폭력을 좋아할까요(do we still like violence)? 폭력적인 영화나 비디오 게임이 인기가 있는 이유가 뭘까요? 이렇게 발전된 기술과 문명 속에 살면서 왜 아직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져가며 상처 주는 걸까요(why do people still yell, throw things, and hurt each other)? 그리고 왜 세상엔 아직도 전쟁이 존재하는 걸까요(why is there still war in this world)? 생각해 보세요. 아마 우리도 야성의 부름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야성의 본능은 마치 우리 안에 있는 에너지처럼(like an energy inside of us) 느껴집니다. 야구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팀을 힘껏 응원하고, 노래방(song-rooms)이나 콘서트에 가서 신나게 노래하고 몸을 흔드는 행동,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나라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투표를 하는 행위, 이 모든 게 야성의 부름 때문은 아닐까요? 만약 어디선가 야성의 부름을 듣게 된다면, 이에 응답할지 말지는 바로 여러분이 선택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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