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자학과 탄식을 털어내야 할 2015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6일 2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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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암 덩어리 보여준 2014년, 그러나 신명도 興도 사라져서야…
自省은 필요하지만 부끄럽기만 한 나라 아니다… 자학으로 지새운다면 自害가 될 뿐
대통령부터 국민 감동시킬 일 찾고 언론은 감동의 소재 널리 찾았으면…

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2014년은 세월호가 국민을 심한 좌절감에 빠뜨렸다. 성공한 나라인 줄 알았는데, 겨우 이 정도뿐인가 하는 절망감이었다. 제 몸의 암 덩어리를 내시경으로 들여다본 것 같은 충격이었다.

민생은 다급한데, 경제 활성화는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림의 떡 같았다. 국회는 ‘안 되게 하는 힘’이 막강함을 보여준 것 외에는 별로 한 게 없다. 대통령과 정부는 불임(不姙) 국회를 다산(多産) 국회로 바꿔내기 위한 헌신적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바위를 뚫는 빗물’ 같은 우직함을 보인 공복(公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업 성공신화도 빛을 잃는 듯했다. 삼성의 이익은 크게 감소했고 훨씬 많은 대기업그룹은 재벌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경영의 골다공증을 드러냈다. 이런 와중에 ‘땅콩 회항’은 대한항공을 넘어 한국 재벌들과 그 오너집단에 또 하나의 오욕이 되었다. 공기업 부실 문제는 해결의 길, 개혁의 길이 멀어 보였다.

이런 상태로 맞는 한국의 2015년은 신명도 흥도 출렁거리지 않는다. 장래에 대한 걱정을 넘어 자탄 자학이 새해 분위기를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래서는 안 된다. 국민정신이 가라앉아서는 될 일도 되지 않는다.

우리 5000만 한국인이 정말 별 볼 일 없는 국민인가. 그렇다면 책 몇백 권으로도 다 기록하기 어려운, 국가와 국민의 그 숱한 성공신화를 어떻게 이뤄낼 수 있었겠는가.

세월호가 한국을 다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치도 정부도 잘하진 못해도 국가와 국민을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은 정치와 정부를 더 좋게 만들어낼 것이다. 개개 기업이 흥하고 망할 수는 있어도 한국 기업이 다 세계시장에서 무릎 꿇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밟히고 쓰러지면서도 다시 뛰었다.

부모가 자식보고 너는 머저리다, 기대도 희망도 없다고 하면 그 자식이 어떻게 되겠는가. 자식이 다 컸다고 부모보고 무능하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느냐고 올려치면 그 부모는 어떻게 되겠는가.

자성(自省)은 필요하다. 나라가 잘못되고 회사가 잘못되고 가정이 잘못되는데 당사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남 탓만 하고 있으면 나라도 회사도 가정도 더 엉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괴(自愧)가 지나쳐 집단 탄식병(歎息病)에 빠지고 자학(自虐)으로 지새운다면 이는 스스로를 몰락으로 이끄는 자해(自害)다.

근거 없는 낙관은 몽상일 수 있지만 비관만으로는 현상을 타개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고 신발 끈을 다시 조여 매면 성공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할 수 없다고 자기부정만 하면 안 되는 결과뿐이다.

2015년 신년 벽두에 정부 어느 청장은 산중수복(山重水複)이라는 사자성어를 말했고, 어느 기업 회장은 자강불식(自强不息)을 임직원들과 다짐했다. 산중수복은 ‘갈 길은 먼데 길은 보이지 않고 난제가 가득하다’는 뜻이고, 자강불식은 ‘스스로 마음을 다지며 쉬지 않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산중수복의 현실을 직시는 해야겠지만 이런 어려움을 자탄만 하고 있어서는 해결이 안 된다. 그 청장도 그런 뜻으로 이 말을 했겠으나 산중수복보다는 자강불식을 앞세웠더라면 더 진취적인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동아일보에 ‘이승재의 무비홀릭’을 연재하는 이승재 기자에게 의견을 구했더니 메일을 보내왔다. “요즘 우리는 상처받기 위해 사는 국민들 같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식으로 젊은이들의 절망과 불안감을 부추겨 마치 절망의 시대를 사는 것 같은 피해의식을 신세대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보다 신세 한탄, 미래에 대한 의도된 두려움을 통해 노력하지 않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위안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어떻게 대한민국을 일궈왔는지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훌륭한 나라가 되었지만, 우리는 늘 만족할 줄 모르며 스스로 욕하고 깎아내리기 바쁩니다.”

자부심으로 다시 뛰자는 생각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것으로 믿는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국민을 감동시킬 일을 찾아 결행하기 바란다. 나 역시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이 공감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소재를 발굴하는 데 더 노력하겠다.

온 국민이 비관이 아니라 다시 도전하는 2015년이기를!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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