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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힘 외교에 활용… 백제는 ‘소프트 파워’ 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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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힘 외교에 활용… 백제는 ‘소프트 파워’ 강국이었다”

김상운 기자입력 2015-01-05 03:00수정 2015-01-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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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에 시리즈 연재 앞둔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무령왕릉 출토 유물 앞에서 백제의 유연한 소프트 파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 교수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문화 강국 백제의 숨겨진 비밀을 본 보에 연재할 예정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신라, 왜(倭)에 선진 문화를 전파한 고대 동아시아의 베네치아. 중국과 고구려 등 강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700여 년간 역사를 꽃피운 문화국가. 당대 중국인은 물론이고 적국 고구려인까지 과감하게 중앙관료로 등용한 개방국가. 바로 백제 이야기다.

최근 백제가 긴 잠에서 깨어나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백제 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마쳤다. 최종 등재 여부는 올 6월쯤 결론이 난다. 특히 최근 극도로 경색된 한일 관계와 맞물려 고대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백제의 외교 역량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동아일보는 백제 역사 연구의 권위자로 ‘공유문화권’ 관점에서 백제를 해석해 주목받고 있는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66)를 인터뷰했다. 노 교수는 앞으로 매주 월요일 백제사의 최근 연구 성과와 현대적 의미를 담은 ‘소프트 파워 강국 백제의 비밀’ 시리즈를 본보에 기고할 예정이다.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교편을 잡고 백제사를 전공했는데….


“내가 역사 연구를 시작한 1970년대만 해도 대구경북 출신이 백제 역사를 전공한 사례가 드물었고 연구 성과도 빈약했다. 그런데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무령왕릉이 도굴된 적 없는 ‘처녀분’으로 발견되면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거다 싶었다. 백제사 연구에 매진해 1977년 백제의 웅진 천도를 주제로 쓴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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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백제사를 다시 돌이켜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시 동아시아는 전체적으로 분열과 갈등의 시기였다. 한반도는 삼국으로 나뉘어 있었고, 중국도 5호16국에 이어 남북조로 갈려 있었으며, 왜도 통일왕국을 이루기 전의 호족 연합정권이었다. 백제는 고구려와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살아남기 위해 주변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외교전에 사활을 걸었다. 요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 벼랑 끝 전술로 버티는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의 상황을 감안할 때 백제의 외교 전략을 한번 눈여겨볼 만하다.”

―백제 외교력의 비결은 무엇인가.

“바로 문화의 힘, 소프트 파워다. 백제는 자국의 선진문화를 주변국에 적극 전파하고 상대국으로부터 군사, 외교적 지원을 약속 받았다. 문화를 외교수단으로 십분 활용한 것이다. 백제는 불교와 도교, 율령, 한자 등 선진문명을 신라와 왜에 전달해 동아시아에서 ‘공유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대 일본이 백제와 깊은 교류를 맺은 원인은….

“왜는 삼국 중 백제에 가장 우호적이었다. 백제의 문화적 매력에 흠뻑 빠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왜의 사신이 방문했을 때 백제는 다른 나라와 달리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지 않고 조용히 궁전의 보물창고를 열어 보여줬다. 함부로 힘을 과시하지 않고 높은 문화역량을 직접 느끼도록 한 것이다. 왜 입장에서는 군사적인 위험부담 없이 백제와 깊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백제와 왜 사이의 이 같은 문화 교류의 정점이 일본 왕실이 보유한 ‘칠지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앞으로 시리즈를 통해 그려낼 백제의 모습은….

“칠지도 백제금동대향로 금동관 등 유물에 담긴 의미와 무령왕의 저수지 건설 등 토목 및 건축 기술의 발달, 유연하고도 실용적인 인재 등용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백제의 소프트 파워의 진수를 보여주겠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문화 외교#백제#소프트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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