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쉿! 저 기품있는 파리고택의 비밀을 말해줄게”… 한국 건축가, 저택구경담을 팩션으로 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보이지 않는 집/백희성 지음/352쪽·1만2000원·레드우드

건축가인 저자가 직접 디자인한 표지에는 제목도 없이 집으로 향해 가는 신사의 그림만 작게 그려져있다. 레드우드 제공
건축가인 저자가 직접 디자인한 표지에는 제목도 없이 집으로 향해 가는 신사의 그림만 작게 그려져있다. 레드우드 제공
기발한 착상에 따뜻한 감성을 녹인 팩션(Faction·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

저자는 2010년 프랑스 그랑제콜 건축학교에서 최우수 졸업 작품 제작자에게 수여하는 ‘폴 메이몽 건축가상’을 받은 실력 있는 건축가다. 그는 8년간 파리에 거주하며 기품 있고 잘 지어진 오래된 저택에 호기심을 품었다. 길 가다 그런 저택과 마주치면 무작정 우편함에 편지를 넣었다. “저는 건축가입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집 내부를 구경해 보고 싶습니다.”

방문을 허락하면 주인을 만나 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할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나무 바닥에서 삐거덕 하는 소리가 났다. 저자가 초대해 준 답례로 수리해 주겠다고 하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가 생전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오랜 시간 의자를 뒤로 젖히는 버릇 때문에 바닥이 상해 삐거덕 소리가 나게 됐다. 삐거덕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의 영혼이 같이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저자는 여러 저택에서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허구를 가미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추리소설 형식이라 흥미롭다.

주인공인 건축가 루미에르 클레제는 파리 시테 섬의 오래된 저택을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단 스위스 루체른의 왈처요양병원으로 가 집주인 피터 왈처를 만나고 그의 아버지인 건축가 프랑수아 왈처에 얽힌 비밀을 풀어야 한다. 주인공은 프랑수아가 중세 수도원을 고쳐 만든 요양병원 등에서 숨겨진 단서를 하나씩 찾아간다.

시테 섬 저택에서 마지막 비밀이 풀린다. 그곳에는 프랑수아가 화재 사고로 아들과 딸을 잃은 여인 아나톨을 위해 만든 장치가 있었다. 계단 위 천장 유리에서 내리쬐는 빛의 온기로 아들의 따뜻한 입김을 느끼게 했다. 정원수 아래에 나무토막을 놓아 비 오는 날이면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딸의 실로폰 연주처럼 들리도록 했다. 그리고 프랑수아가 아들에게 남긴 출생의 비밀도 집안에 숨겨져 있다.

이야기는 “모든 이들의 기억의 장소는 바로 집이었다”란 문장으로 끝난다. 아무리 크고 좋은 집에 살아도 그곳을 추억과 사랑으로 채우지 못한다면 결국 빈껍데기일 뿐이라는 얘기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보이지 않는 집#팩션#허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