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정체성 상실, 위기 불렀다” 세계좌파의 반성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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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세르주 알리미 외 32명 지음·이진홍 옮김/368쪽·1만9800원·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80∼90년대 유럽 좌파정권을 이끈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상단 왼쪽)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상단 오른쪽). 유럽의 좌파는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와 신자유주의로 경도되는 원칙 결여 때문에 실패의 길을 걸었다. 한국에서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한국 좌파정당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동아일보DB
1980∼90년대 유럽 좌파정권을 이끈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상단 왼쪽)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상단 오른쪽). 유럽의 좌파는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와 신자유주의로 경도되는 원칙 결여 때문에 실패의 길을 걸었다. 한국에서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한국 좌파정당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동아일보DB
한국 좌파 정당에 과연 미래가 있는가. 최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진보 진영에서 제기되고 있는 최대 화두다. 이 책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당의 퇴조를 분석하면서 한국 좌파들의 현실까지 함께 다뤘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있다. 한마디로 전 세계 좌파들이 쓴 냉철한 자기고백 내지 반성문이다.

중도 좌파 성향의 프랑스 최고 권위지인 르몽드가 격월로 펴내는 단행본(마니에르 드 부아)을 뼈대로 한국 진보 계열 지식인들의 글을 추가했다.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 이탈리아 한국 등의 좌파 지식인 33명이 각국의 좌파 지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들이 말하는 유럽 좌파 정당의 최대 문제는 바로 원칙과 일관성의 결여다.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정권을 잡기 위해 좌파로서의 일관된 정책을 포기하다 보니 정체성을 잃고 지지층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실리와 명분을 모두 잃은 셈이다.

예컨대 프랑스 사회당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1981년 집권한 이후 다시 정권을 잡기까지 무려 17년이 걸렸다. 미테랑은 집권 초기 기간산업 국유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경제 시스템에 충격만 안긴 채 불과 1년 만에 손을 들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유럽연합(EU)의 부상이라는 현실적인 난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1990년대 중반 유럽 정치권을 휩쓴 좌파 정당들이 도리어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있다. 당시 EU 소속 15개국 중 12개국에서 좌파 혹은 좌파연합 정권이 들어섰다. 이 가운데 ‘제3의 길’로 주목받은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공교육마저 시장의 손에 맡기는 정책까지 도입했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2002년 제정한 교육법에서 감사 당국이 ‘비효율적’이라고 판정한 학교들에 대한 관리를 경쟁 입찰을 거친 민간기관이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역시 신자유주의에 발맞춰 노동유연성을 추진했다.

유럽 좌파 정당들의 갈지자 행보는 국내 좌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오직 표를 얻기 위해 서로 색깔이 다른 진보세력들이 연합해 통진당을 세우고 제1야당과 ‘야권연대’를 조직했다. 이 책에선 “통진당은 창당을 추진하던 때부터 급조된 선거정당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야권연대라는 정치적 기회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술 정당일 뿐이었다”고 지적한다.

좌파 정당 내부의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도 발목을 잡았다. 예컨대 1980년대 프랑스 사회당은 미테랑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을 중심으로 정책이 수립되면서 내부 분열을 가져왔다. 통진당이 소수의 당권파에 의해 장악된 것을 연상시킨다.

이 책은 결국 정치적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고 좌파 특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말한다. 극심한 경제 양극화로 인한 지금의 위기가 좌파들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으로 분단된 데다 진정한 의미의 좌파가 한 번도 집권하지 못한 한국에서 좌파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또 하나의 난관일 수밖에 없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좌파가 알아야 할 것들#좌파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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