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상사가 ‘자고 가라’며 손목 당겼지만 성추행 아니다”…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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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가요!”

세탁공장 소장 서모 씨(61)는 2011년 6월 어느 날 오후 8시경 강원 정선군 사택 침대 방에서 부하직원 A 씨(54·여)의 오른 손목을 세게 움켜쥐고 당기며 이렇게 말했다. A 씨는 새 밥상을 전해주러 잠시 들렀다가 상사인 서 씨가 “잠깐 있다가 가라”며 맥주와 담배를 권하자 마지못해 5분 정도 함께 침대 방에 있다가 어색함에 막 일어서던 참이었다. A 씨는 사택을 나온 뒤 직위를 이용해 성추행했다며 서 씨를 형사 고소했다.

서 씨는 1, 2심에서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가 인정돼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서 씨의 언행이 위계를 이용한 성추행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해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일 밝혔다. 대법원은 서 씨가 성적 의도가 아니라 “돌아가겠다”며 일어서는 A 씨를 다시 앉히기 위해 손목을 움켜잡은 것이고, 쓰다듬거나 안으려고 하는 등의 성적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며 추행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상황에 따라 손목을 움켜잡은 행위가 성추행일 수도 있지만, 서 씨 사건은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의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만약 서 씨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손목을 쓰다듬었다면 추행이 인정됐겠지만 성적 의도가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손목을 움켜쥔 행위만으로는 추행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서 씨가 “자고 가라”며 손목을 잡아당긴 언행은 법적으로 성추행이 아니더라도 성희롱에 해당한다. 성희롱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낀 것만으로도 인정되지만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만 할 수 있을 뿐 가해자를 형사처벌할 수는 없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범죄지만 성희롱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한 법률은 없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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