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기자의 뫔길]一日一笑, 일상의 평범한 즐거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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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까∼똑∼’ 하는 소리에 여러 차례 놀라곤 했습니다.

늦은 밤 눈꺼풀이 천근만근일 때 찾아오는 그 소리는 성가신 불청객입니다. 급한 일은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걱정 끝에 머리맡을 더듬어 전화를 들어 확인합니다. ‘근하신년’, 아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보낸 듯한 휴대전화 연하장입니다. 순간 고마운 마음보다는 맥이 빠집니다.

그렇지만 반가운 답신도 있었습니다. 이해인 수녀께서 보낸 문자가 그랬습니다. 지난해 여러 일로 도와주신 게 기억나 새해 인사를 보냈더니 답신이 왔더군요. 그리고 한쪽에는 최근 쓰신 ‘새해에는, 친구야!’라는 제목의 동시가 있습니다. 시는 ‘웃음소리가 해를 닮은 나의 친구야…’로 시작합니다. 전, 이 구절이 좋았습니다. “…푸른 풀밭 위 하얀 양들처럼 선하고 온유한 눈빛으로 더 많은 이들을 돕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자”

동시 옆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새해 결심 10가지’도 적혀 있었습니다. ‘험담하지 마십시오, 음식을 남기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시간을 내십시오, …기쁘게 사십시오.’

잠시 동시를 따라 읽고, 교황의 결심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속으로 이 정도면 한 번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연말에 인터뷰 때문에 만난 혜민 스님은 책과 강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분들께 영향을 끼치는 분입니다. 거꾸로 영향 받은 세 분을 꼽아 달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어머니와 은사인 휘광 스님, 그리고 최근엔 프란치스코 교황이라고 하더군요. 불교 수행자인 스님이 종교에 개의치 않고 교황을 꼽은 것이 조금 놀랍고 신선했습니다. 다른 종교나 종교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풍토가 강하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높은 곳에 있을수록 자신을 낮추는 게 힘든데, 이를 실천할 수 있으면 사회적으로 큰 울림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교황이라는 거죠.

이른바 ‘프란치스코 교황 10계명’의 매력은 범인에게서 너무 멀게 있지 않은 평범함에 있습니다. 예외 없는 완벽한 실천은 어려워도 그중 몇 가지는 가능한 것 아닐까요?

혜민 스님의 행복론도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불가의 오랜 가르침이지만 한마디로 미래의 행복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당나라 선승 운문 스님은 일찍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이라 했죠. 진정한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무심코 흘려보내는 그 하잘것없는 하루하루, 바로 그 속에 들어 있다는 거죠. 원불교에서는 한술 더 떠 날마다 생일, 일일시생일(日日是生日)로 지내야 한다고도 하네요.

저를 포함한 한국인들의 심성에는 목표와 꿈, 현실과 미래, 그 밑바닥에는 한(恨)과 절치부심 등 미래형의 ‘센’ 단어들이 익숙합니다. 비장미가 넘치죠. 그러나 재미와 편안함이 빠진 하드보일드 액션만으로 수십 년의 ‘인생 드라마’를 끌고 갈 수 있을까요. 주인공이나 지켜보는 관객 모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올 한 해, 날마다 생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일일소(一日一笑)의 즐거움을 찾아가면 어떨까요.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즐거움#프란치스코#10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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