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이 심은 벼 한 포기… 최빈국 탈출 꿈 영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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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95주년 2015 새해 특집]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3년차/준비해야 하나된다]
[사회주의 굴레 벗은 나라들]<中>‘농업 근대화’ 내건 미얀마

고건 전 총리(우측 상단 마이크 들고 있는 사람)와 한국국제협력단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2일 새마을운동사업 대상 마을로 지정된 미얀마 수도 네피도 인근의 한 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에게 강연하고 있다. 고 전 총리는 1970년대 내무부에서 5년간 새마을사업 담당 국장으로 근무했다. 채널A 제공
고건 전 총리(우측 상단 마이크 들고 있는 사람)와 한국국제협력단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2일 새마을운동사업 대상 마을로 지정된 미얀마 수도 네피도 인근의 한 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에게 강연하고 있다. 고 전 총리는 1970년대 내무부에서 5년간 새마을사업 담당 국장으로 근무했다. 채널A 제공
“한국 덕분에 마을에 비닐하우스와 양계장까지 들어섰습니다. 좋은 품종까지 지원해 줘서 이번 콩 농사 수확은 훨씬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흘레구 인근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마우 헤 씨(62)는 2013년 한국을 방문한 경험을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네피도에서 열린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미얀마 새마을운동·개발연구원 착수 보고회’에서 만난 그는 출연 연사의 발표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메모에 열중했다.

사회주의에서 자유 시장경제로 개방을 택한 미얀마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면서 모델로 제시한 나라다. 코이카의 농촌 근대화 노하우 전수는 통일에 대비한 북한 농촌 개발 사업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한때 북한과 닮았던 미얀마의 체제 전환을 돕는 작업은 사실상 ‘통일 예행연습’인 셈이다.

○ 미얀마에 한국의 근대화를 심다

지난해 시작한 미얀마 새마을운동 사업에 코이카는 6년간 2200만 달러(약 240억 원)를 지원한다. 시범마을 100곳을 육성해 도로 정비와 농경지 및 관개 작업을 한다는 구상이다.

코이카는 미얀마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같은 역할을 할 미얀마개발연구원(MDI) 설립도 지원하고 있다. MDI가 설립되면 미얀마는 자국 실정에 맞는 시장경제 정책을 개발할 기반을 갖게 된다. 미얀마 MDI 사업 준비위원회 사무국장인 저우 우 박사는 “1950년대에 미얀마와 비슷한 국내총생산(GDP)을 기록했던 한국의 압축 성장, 특히 농촌 근대화 경험은 현재 미얀마에 가장 필요한 경험”이라며 “코이카의 지원 사업으로 2020년 최빈국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가 목표”라고 말했다.

정책 수립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정확한 통계. 코이카는 2013년부터 200만 달러를 들여 정보기술(IT)에 기반한 통계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충식 코이카 이사는 “올해부터 미얀마를 중점 협력국에 포함해 지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대학 협력 사업으로 ‘지한파’ 육성

지난해 12월 초 양곤대의 한 강의실. 학부생 23명이 김태현 중앙대 교수의 국제정치학 특강을 듣고 있었다. 틴잘리 투투 양(18)은 “토론식 참여형 수업이어서 강의 주제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코이카는 민관 협력 사업으로 중앙대와 함께 2013년부터 양곤대에서 교재 개발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양곤대 학생들은 미얀마의 지도층 인사가 될 인재들”이라며 “이들에게 한국의 국제정치학적 시각을 전파하는 것은 지한파 육성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네피도 인근의 예진농업대 학생들은 목포대와 코이카로부터 재배 기술 강의와 실험실습 장비 등을 지원받고 있다. 수이 므 씨(22)는 “이론으로만 배웠던 무균 배양을 직접 실습할 수 있어 교육이 더 충실해졌다”고 말했다.

○ 미얀마 지원 사업은 ‘통일 예행연습’

한때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미얀마는 북한과 닮은 점이 많다. 미얀마 국가기획경제개발부에서 국가 통계 구축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오순상 코이카 자문관은 “현재 미얀마가 풀어야 할 경제개발과 빈곤 해결 과제는 북한이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묘 쭈웨 예진농업대 총장은 “전체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미얀마처럼 북한도 열악한 농업 현실을 개선하지 않으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며 “북한도 한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북한에 맞는 농업 근대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흘라잉 농업관개장관 “김정은 따귀 때려서라도 개방 중요성 알리고 싶어” ▼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 가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나 개방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 그래도 북한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의 따귀를 때릴 것이다.”

민 흘라잉 미얀마 농업관개장관(사진)은 지난해 12월 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도 개방을 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 배불리 먹고사는 것이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과 1975년 수교한 미얀마지만 2011년 개방을 택한 뒤 북한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었다.

미얀마는 1983년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이후 북한과 단교했다가 2007년 국교를 복원했다. 하지만 수교 초기 미얀마 사관학교 교관 등 300명이 넘던 미얀마 상주 북한 인원은 현재 20여 명으로 줄었다.

왕조 국가였던 미얀마는 1886∼1948년 영국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이후 1962년 네 윈 장군의 쿠데타로 시작된 미얀마 군부 체제는 사회주의를 추구했다. 미얀마 사회주의는 과도한 국유화로 경제 불황을 겪었고 ‘양곤(미얀마의 옛 수도)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1988년 또 다른 군사정권이 들어섰지만 아웅산 수지 여사 등 민주화 열망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2011년 총선을 통해 군부는 정권을 민간에 이양했다. 군부의 지원을 받는 정당이 국정을 주도하지만 이때부터 북한과 미얀마는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 이백순 駐미얀마 대사 “주민 삶에 다가가 한국 인지도 높일 것” ▼

‘지원국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공적개발원조(ODA)’

이백순 주미얀마 대사(사진)는 세계 각국이 ‘ODA 구애 전쟁’을 벌이는 미얀마에서 한국 ODA가 갖고 있는 강점을 이같이 압축해 설명했다. 이 대사는 이어 “농촌 주민에게 직접 재배 기술을 가르쳐 주고 집과 도로를 지어 주는 새마을운동 사업은 한국의 차별화된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미얀마는 1950년대에 한국에 식량을 지원해 준 나라다. 1970년대까지 경제 수준이 비슷했던 한국은 농촌 근대화에 성공한 후 세계 10위권 국가로 성장했다. 미얀마가 한국의 성공 노하우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면서 경제 정책 수립 기관의 모델을 한국에서 찾는 이유다. 이 대사는 “ODA 사업에는 정치성이 없지만 미얀마가 시장경제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코이카 사업은 결과적으로 체제 전환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혼선이 적지 않았다. 농촌진흥청과 행정자치부, 외교부가 사전 조정 없이 경쟁적으로 미얀마에서 사업을 벌이다 보니 미얀마 정부는 혼란스러웠다. 코이카에서 ODA 농업 전문가로 활동하는 신종수 박사는 “한 부처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일관된 지원 사업을 펼쳐야 미얀마 ODA 사업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사는 “한국도 유·무상 원조 통합과 함께 민관 지원 사업 전체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종합적이고도 전략적인 접근으로 한국의 인지도를 높일 때”라고 강조했다.

네피도·양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새마을운동#사회주의#농업 근대화#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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