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은, 남북정상회담에 전제조건 없이 나서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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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 재개와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광복 및 분단 70주년을 맞아 남북관계 진전에 북한이 관심을 보인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미연합 군사연습 중단과 제도(흡수) 통일을 추구하지 말 것 등을 대화의 전제조건처럼 요구해 차분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해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분별 회담도 할 수 있다”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또 “대화,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전체적인 발언 취지는 남한 정부가 대북(對北)정책을 바꿔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책임을 남한 쪽에 전가하는 기존 시각도 그대로다. 특히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군사훈련을 비난하며 “외세와 함께 벌이는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전쟁 책동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이 “남조선 당국은 제도 통일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 상대방의 체제를 모독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동족을 모해하는 불순한 청탁 놀음을 그만둬야 한다”고 요구한 것도 마찬가지다. 흡수 통일과 자신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우려는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이 두려운 듯하다.

김정은의 현실 인식에 변화가 없는 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들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0월 각각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했으나 그때 이뤄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과연 남북관계를 개선시켰는지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고, 과감한 개방과 개혁으로 1인 독재 체제의 폐단을 시정할 때에만 남북관계도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고 북의 활로도 열린다. 하지만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핵 억제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을 강조하면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내부의 사상 통제도 강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박 대통령은 “올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 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이라고 밝혔으나 조급해할 이유는 없다. 작년에도 북한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얘기했지만 잇단 도발을 했다. 지금 남북 간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과 대북 인도적 지원 등에서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대화다. 북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김정은#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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