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푸틴과 오바마의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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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새해 세계 경제를 좌우할 최대 이슈는 뭘까. 국제유가가 첫손에 꼽힌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그 다음이다. 유가가 6개월간 배럴당 110달러에서 50달러대로 수직 하강하면서 산유국과 수입국의 명암은 극적으로 갈렸다.

역사를 보면 석유를 둘러싼 경제 전쟁의 뒷면에는 늘 국제 정치와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이 있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데는 1980년대 유가 폭락이 큰 역할을 했다. 최근 유가 급락을 놓고도 러시아 경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합작이라는 ‘음모론’이 퍼지고 있다.

실제로 가장 타격을 입은 곳은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등 미국과 대립하는 나라들이다. 반미(反美) 노선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유가 폭락은 미국이 일으켰으며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약화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 논리로 보면 유가 하락은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와 셰일가스 혁명으로 인한 공급 증가, 미국 등 비(非)전통적 산유국들에 시장점유율을 뺏기지 않으려는 OPEC의 버티기 때문이다. 과거엔 유가가 내려가면 OPEC가 생산량을 줄여 값을 올렸지만 2008년 침체기에 양을 줄였다가 점유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엔 감산(減産)을 하지 않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가 20달러로 떨어져도 감산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이 음모를 꾸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가 하락을 방관하며 즐기는 건 맞는 듯하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합병에 격분한 미국은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사사건건 미국에 태클을 건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강한 러시아’를 추진하는 푸틴을 미국 포브스지(誌)는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꼽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위,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3위다.

미국으로선 러시아 경제가 악화돼 푸틴이 흔들리면 좋을 것이다. 게다가 경제의 70%를 소비지출에 의존하는 미국은 저유가가 되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좋아진다. 유가 하락은 미운 나라를 손보고 경제도 활성화하는 일거양득의 카드다.

러시아는 죽을 지경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러시아 수출의 70%, 정부 재정 수입의 절반을 차지한다. 2000년대 고(高)유가 덕에 연평균 7% 성장률을 보였던 러시아 경제는 유가 추락으로 디폴트 위기가 거론될 만큼 고꾸라졌다.

러시아는 미국에 항복할 것인가. 국내 러시아 전문가들 중엔 “아니다”라는 사람이 많다. 러시아는 역사적 의미가 큰 크림 반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 9위의 경제대국인 데다 외환보유액도 적지 않다. 대외적 압력이 강할수록 ‘21세기 차르’ 푸틴에 대한 지지가 높아질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독재를 감안하더라도 최근 좀 떨어졌다는 푸틴 지지율이 무려 82%다.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겨루는 중국은 푸틴을 밀어주고 있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해 말 “러시아는 현재 직면한 문제를 능히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중국이 힘닿는 대로 도울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1500억 위안(약 26조 원)의 통화스와프와 함께 에너지 금융 기술 등 40개 분야 협정을 체결했다.

유가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합종연횡은 세계 권력 지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주변 4강의 움직임에 나라 운명이 달린 한국으로선 주목해야 할 문제다. 당장 통일을 위해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유럽을 경제공동체로 묶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부터 미-러 힘겨루기에 끼어 흔들리게 생겼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국제유가#러시아 경제#푸틴#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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