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5]기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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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당선작]<줄거리>박지하

인태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쓰레기’라고. 맞다. 인태는 쓰레기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불법도박장에 드나들며 빚진 돈만 수천만 원. 현재는 환전박스에 갇혀 칩을 교환해주는 일로 근근이 먹고산다. 하나뿐인 피붙이인 부친은 치매 걸린 지 오래. 그나마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으로 요양원에 떠넘긴 지 몇 년 됐다.

오로지 돈벼락에만 관심 있는 인태의 올곧은 인생에 불청객이 끼어든다. 그날은, 요양원을 탈출한 부친이 설봉호를 타겠다며 여객선 터미널로 향한 날이었다.

북에 전처와 갓난아들을 두고 온 아버지 대국. 정신을 놔버린 이후 여객선 터미널로 달려가 운항이 중단된 설봉호를 타겠다며 생떼를 부린 게 수차례다. 그날 역시 아버지 대국을 모셔가라는 터미널 관리인의 호출에 인천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때, 난데없는 전화가 걸려왔다. 국정원이란 곳에서 조카를 찾아가라고.

아버지 전처의 손녀. 한마디로 인태와 친척 관계인 조카가 탈북을 해서 남한에 왔다는데…. 인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저 살기도 빡빡한 처지에 조카라니?! 그것도 평생 마주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전처 핏줄이다. 그런 조카 둔 적 없다며 ‘배 째라’로 나가던 찰나…. 인태의 동공이 커진다. 탈북자에게 떨어지는 나랏돈이 수천만 원이라고 한다. 정착지원금이라나 뭐라나! 저 돈만 가진다면 인태의 찬란한 30대를 다시 불태워 볼 수 있다! 인태는 탈북자인 조카 진옥을 책임지겠다며 집으로 데리고 오는데….

▼한줌의 빛도 안 드는 외길… 혼자가 아님을 믿어▼
[당선소감]시나리오


박지하 씨
박지하 씨
올겨울은 유독 추울 것 같았습니다. 추음(秋陰) 아래 참아내던 인내도 쩍쩍 갈라졌고, 시험대 위에 올라 겨우 버티는 나날이었습니다.

단비 같은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땐, 기나긴 겨울과 드디어 작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잠시 목을 축이고, 재정비하여 다시 정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줌의 빛도 안 드는 외길을 달려온 건, 혼자가 아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 폭격을 맞아가며 올 한 해 함께 버텨준 가족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가족이 있기에 펜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인류애를 전하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여전히 고지는 멀기만 합니다. 누군가 넘어뜨린다 할지라도, 일어나 끝까지 달려 보렵니다. 2015년, 따뜻한 수상 소식을 전해주신 동아일보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1982년 서울 출생 △방송작가교육원 전문반 수료

주필호 씨(왼쪽)와 이정향 씨.
주필호 씨(왼쪽)와 이정향 씨.
▼탈북자-이산가족에 대한 진지한 접근 돋보여
[심사평]시나리오


본선에 오른 열두 편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이지만 두드러지는 작품이 보이지 않아 당선작을 내는 데 고민이 많았다.

주제 의식도 좋고 안정감 있는 글 솜씨와 구성력을 갖췄으나 작금의 상업 영화 현장에서 요구하는 신선함과 재미를 갖추지 못해 채택되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다. 최지운의 ‘트라이 아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며, 김선일의 ‘이화’는 소재도 참신하고 소외 계층에 대한 시선도 좋았으나 상투적인 구성과 신파적인 결론이 아쉬웠던 경우에 해당된다.

당선작으로 뽑은 박지하의 ‘기적’은 탈북자와 이산가족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돋보였으나, 브로커의 잔인함과 도박장 폭력배들의 난투극은 상업 영화로서의 부족함을 메우려고 무리하게 차용한 듯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주제 의식, 상업성, 구성력에서 고른 점수를 받아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해가 갈수록 짙어지는 현상이지만, 응모작들에서 TV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영화만의 특성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다양한 영상 매체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시나리오 작가들이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이정향 영화감독·주필호 주피터 필름 대표
#동아일보 신춘문예#시나리오#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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