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손 안의 ‘공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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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산업부 차장
이헌진 산업부 차장
요즘 ‘멍키 스패너’를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재질은 딱딱한 플라스틱이지만 꽤 쓸 만하다. 볼트와 너트를 조이거나 죄는 데 쓰이는 이 공구는 직접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3차원으로 모델링된 몽키 스패너 파일을 무료로 내려받아 3D프린터로 인쇄했다.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을 뿐인데 모니터상의 3차원 형상이 손 안에 들어왔다. 녹인 플라스틱을 얇게 층층이 쌓아 가면서 제품을 만드는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회사에 보급형 3D프린터가 설치된 지 한 달여.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동료는 무전원 스피커, 식물재배기 등을 직접 모델링해 프린트했다. 나의 현재 목표는 마음에 드는 문구를 넣은 휴대전화 거치대를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모형 제작보다는 조금 어렵다. 거치대의 3차원 모델링 파일은 인터넷에서 찾았지만 문구를 새기려면 그래픽 프로그램을 배워야 한다. 통상 3, 4시간만 독학하면 기존 파일을 수정할 수 있다고 한다. 문과 출신으로 컴퓨터 그래픽은커녕 스케치조차 해본 적이 없는 40대 중반의 기자는 도전정신에 불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3D프린터를 ‘얼리 어답터’들의 장난감 정도로 여겼다. 재미는 있어 보이나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장만할 필요가 있을까? 3D프린팅을 경험하면서 이런 생각은 바뀌었다.

그동안 3D프린팅의 발전을 막아온 모든 장벽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요즘에는 200만 원대의 꽤 쓸 만한 보급형 3D프린터 제품이 적잖다. 얼마 전 KAIST 학생들이 100만 원대 제품을 개발해 화제가 됐다. 프린팅 재료도 플라스틱을 넘어 금속, 세라믹, 나무, 콘크리트, 바이오 등으로 다양해졌다. 인터넷에는 무료로 3차원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유사이트가 하나둘 생겨난다. 비전문가도 손쉽게 자신만의 아이템을 3차원 모델링할 수 있는 간편한 그래픽 프로그램도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3차원 스캐닝 기술의 발달은 3D 콘텐츠 분야에 근본적 변화를 예고한다. 스캐닝만 하면 3차원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에 연결해 쓰는 휴대용 3D 스캐너가 개발됐다. 가격도 그동안 나온 제품들에 비해 훨씬 싸다. 조만간 스마트폰에 3D 스캐너가 내장될 것이다.

이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누구나 3D프린팅이라는 ‘대장간’이나 ‘목재소’, 아니 ‘공장’을 가질 날이 멀지 않았다. 이미 자동차 항공 전자 등 산업현장에는 3D프린팅이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치과, 정형외과 등 의료분야에서도 도입이 시작됐다. 휴대전화 케이스, 이어폰, 신발, 피겨 등 생활용품 영역에서 ‘개인 맞춤형’이라는 타이틀로 3D프린팅의 싹이 트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대적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사람은 여전히 적은 듯하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삶을 이렇게 극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시에 탄도 계산이나 암호 해독을 위한 군사장비로 쓰이던 집채만 한 컴퓨터가 개인의 필수품인 PC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없었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PC는 개발 이후 한동안 소수의 전유물이다 순식간에 확산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대체 일반인에게 3D프린터가 왜 필요한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반인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의 유효기간을 떠올려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제4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꼽히는 3D프린팅에 높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이헌진 기자 mungchii@donga.com
#3D 프린터#공장#3D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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