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드레이 란코프]북한의 시장 개혁 감상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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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실시될 ‘5·30조치’… 생산량의 60% 농가소유 인정
공장에선 지배인 책임경영제… 김정은식 시장개혁 노선
中덩샤오핑의 개혁과 유사
체제유지용 개발독재 한계불구, 길게 보면 남북통일 기반될것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최근 김정은 정권에 시장개혁을 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조짐이 보인다. 2012년 ‘6·28방침’을 내놓고 농가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을 도입하기 시작한 북한은 내년부터 실시되는 ‘5·30조치’를 통해 개혁을 더 본격화할 것이다. 5·30조치에 따르면 농가는 생산량의 40%만 국가에 납부하고 남은 60%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다. 국가농장을 바탕으로 한 공산주의 농업 구조의 해체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공업에서도 내년부터 ‘지배인 책임경영제’가 실시될 예정이다. 지배인은 물자 조달, 생산물 판매, 노동자 고용 등 경영과 관련된 사안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당에 의해 임명된 간부였던 지배인을 소유자와 구별하기가 어려워지는 셈이다.

김정은의 새 노선은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시작한 중국의 개혁과 유사하다. 북한에서도 시장개혁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개혁을 환영하고 지원해야 하는 동시에 이 정책의 한계를 확실하고 냉정하게 이해해야 한다. 북한의 개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많다.

첫째, 중국의 개혁·개방 시대에 정치사찰과 국민감시는 상당히 완화됐지만 북한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같은 민족인데도 너무 잘사는 이웃인 남한의 매력 때문에 북한 정치 엘리트는 북한 민중이 동독처럼 혁명운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여전히 엄격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인권유린, 쇄국정치, 주민감시, 언론검열 등은 개혁을 하는 북한에서는 국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최근 북한 정권이 시장화 정책을 실시하는 동시에 중-북 국경 경비 강화, 남한 영상물 대규모 단속 등 주민을 더욱 엄격하게 감시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이 이 유감스러운 사실을 잘 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둘째, 북한의 개혁이 남북 관계의 개선을 초래할 수 있지만 완벽한 조화 협력 시대의 개막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위협을 조작함으로써 내부에서 긴장감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에게 이러한 외부 위협의 존재로 남한만큼 그럴듯하게 활용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따라서 개혁을 하는 북한은 대규모 도발은 피할 듯하지만 가끔 긴장을 고조하기 위해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개혁을 하는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억제력 수단으로도, 벼랑 끝 외교 수단으로도 필요로 하며 경제개혁에 성공할 경우에도 이런 수단을 여전히 필요로 할 것이다.

넷째, 분단국가인 북한의 경우 경제개혁으로 국내 안정을 유지하기 더 어렵게 될 것이다. 결국 개혁을 실시하는 김정은의 북한은 경직된 사회제도를 변화시키지 않으려 했던 김정일의 북한보다 덜 안정될 것이다. 시장화는 국민의 국가의존도를 약화시키고, 지금까지는 차단하기 어려웠던 정보와 지식이 교류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다.

결국 북한 민중은 남한 생활에 대해 많이 배우고, 동독 주민처럼 ‘부자 형님’인 남한과 통일함으로써 모든 경제적 어려움을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분단국가가 아닌 중국과 베트남은 이러한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북한의 개혁 시도를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개혁 덕분에 북한 사람들의 생활이 많이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개발독재’의 경험이 잘 보여주듯 시장화는 경제성장 및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다준다. 북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다. 개혁을 하는 북한은 핵도 포기하지 않고 가끔 대남 도발까지 감행할 테지만 현재만큼 국제 안전을 위협하는 국가는 아닐 것이다. 남한처럼 북한도 국제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의 조건으로 동북아 안정 유지를 바라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혁을 통해 이뤄지는 경제성장은 장기적으로 보면 남북통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개발독재의 길에 접어들 김정은 정권은 인프라 개발, 교육 개발, 기술 현대화 등을 실행함으로써 낙후성을 극복하고 덜 어렵고 덜 비싼 통일을 위해 자신도 모르게 기반을 세울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개혁 전망에 대해 착각을 하면 안 되면서도 이 소식을 반갑게 환영해야 하는 이유다.

안드레이 란코프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 andreilankov@gmail.com
#김정은#시장개혁#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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