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남은 한 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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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분 중에 일 잘하기로 소문난 분이 있었다. 매우 유능해서 라이벌 회사에서 근무하는 선배가 스카우트 제의를 해올 정도였다. 그러나 존경하는 선배의 제의까지 거절하며 애사심을 발휘했는데 무슨 연유인지 하루아침에 한직으로 발령이 났다. 열심히 일했던 만큼 회사에 더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선배에게 전화해 당장 그 회사로 옮기겠다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를 묻는 선배에게 “○○부로 발령이 나서”라고 말했더니, 의외로 선배는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이렇게 당부했다.

“지금 그 부서가 별로라고 해서 근무도 해보지 않고 사표 내버리면 거기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그 사람들의 심정이 어떻겠니. 가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6개월만 일해 봐. 그러면 그때 너를 우리 회사로 모셔올 테니까.”

그분은 선배의 말을 듣고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이제까지 자기가 유능하고 일을 잘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일한 만큼 빛이 나는 화려한 부서에서 근무했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일을 해도 별반 생색이 나지 않는 자리에서 근무한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돌아보게 된 것이다. 하마터면 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줄 뻔했다며 선배에게 고마워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자녀를 훌륭히 키운 어머니가 계시다. 사회에 크게 기여한 인물을 키운 어머니에게 표창을 하려고 하자, 고령의 어머니는 그 상을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거절의 이유는 이랬다.

“나는 이제까지 내 자식만 잘 키우려고 노력했지 남의 자식을 위해 희생봉사를 해보지 않았다. 어미가 자기 자식 잘 키우는 것은 짐승들도 하는데, 사회에 봉사한 것도 없이 내 자식 잘 키웠다고 상을 받을 수는 없다.”

사회봉사는커녕 내 자식 잘 키우는 일에도 함량 미달인 나로서는 뜨끔했다. 어미가 자식을 잘 키우려는 것은 짐승도 할 줄 안다는 말씀, 너무나 기본적인 일을 해놓고 상을 받고 어쩌고 할 문제가 아니란 말씀이, 상을 받아 만천하에 훌륭한 어머니라고 알려져서 주는 교훈보다 더 큰 가르침을 준다.

이제, 부지런히 한 해를 마무리할 때다. 그동안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잘나가는 것에 취하여 주변을 배려하지 못했다면 다행스럽게도 아직 한 달이 남아 있다. 남은 한 달이라도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따뜻한 연말이 되면 좋겠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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