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오바마-헤이글 ‘썰렁 이별’이 부러운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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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경질이지만 떠날땐 포옹… 한국서도 이런 모습 볼수 있을까

이승헌·워싱턴 특파원
이승헌·워싱턴 특파원
24일 오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척 헤이글 국방장관의 사퇴를 발표한 백악관 국빈 만찬장.

헤이글 장관이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참모들과의 갈등으로 사실상 경질되는 자리인 만큼 10여 분의 사퇴 발표 회견 분위기는 냉랭했다.

둘은 거의 웃지 않았고 눈도 별로 마주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헤이글 장관의 경질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국방부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만 말했다. 회견 막판에 오바마 대통령이 헤이글 장관을 잠깐 포옹했지만 미국인들이 반가움이나 감사의 표시로 흔히 하는 ‘힘찬 포옹’과는 거리가 멀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장면을 ‘어색해 보이는 포옹(awkward looking hug)’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떠나는 헤이글 장관의 임기 1년 9개월을 평가했다. 그는 “국방 예산 삭감과 아프가니스탄 철군이라는 임무를 잘 수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척은 나와 다른 공화당 출신이지만 (민주당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맡으며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정파가 아니라) 나라가 먼저라는 메시지를 워싱턴에 던졌다. 개인적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헤이글 장관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동안 보여준 우정과 지원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

이 서먹해 보이는 이별 장면을 보면서 기자는 둘의 갈등 못지않게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런 자리를 만들어내는 미국의 정치 풍토에 눈길이 더 갔다. 한국 정치권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헤이글 장관처럼 정권과의 갈등으로 그만두면 대통령의 사퇴 발표 회견은 고사하고 청와대 대변인이 보도자료를 낭독하는 게 대부분이다.

심지어 떠나는 사람을 비판하는 때도 있었다. 지난해 9월 청와대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하는 것에 반발하며 물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진 장관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럴 거면 장관직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한국과 미국의 정치환경과 역사는 물론 다르다. 하지만 아무리 갈등했더라도 마지막엔 최소한의 격식을 갖춰 이별하는 모습에서도 정치의 수준과 국격이 드러날 수 있다. 어색함 속에서도 서로 평가할 것은 해주는 이별 장면을 한국에선 언제 볼 수 있을까.

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
#헤이글#미국#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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