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미술관은 학교다, 소통과 결속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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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5번가의 뮤지엄 마일에 자리잡은 솔로몬 알 구겐하임 뮤지엄의 외관. 소라처럼 나선형으로 지어진 외관이 특이하다. 표면에 ’미술관
은 학교’라고 씌어 있다. 이 엽서는 구겐하임 뮤지엄의 기념품상점에서 구입.
뉴욕 맨해튼 5번가의 뮤지엄 마일에 자리잡은 솔로몬 알 구겐하임 뮤지엄의 외관. 소라처럼 나선형으로 지어진 외관이 특이하다. 표면에 ’미술관 은 학교’라고 씌어 있다. 이 엽서는 구겐하임 뮤지엄의 기념품상점에서 구입.
이 엽서에 있는 희한한 건물. 미국 뉴욕시내 ‘솔로몬 알 구겐하임 미술관’(1939년 개관)이다. 설립자 솔로몬 구겐하임(1861∼1949)은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광산 집안 자손이다. 알래스카 주 유콘 강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일어난 클롱다이크 골드러시(1896∼1899년) 때 큰돈을 벌었다. 형 대니얼 역시 광산업으로 돈을 번 기업가. 그래서 미국에서 ‘구겐하임’가는 광산재벌의 상징이다.

내가 여길 들른 건 몇 주 전. 칸딘스키의 초기습작을 보기 위해서였다. 조용히 감상할 요량으로 아침 일찍 박물관을 찾았다. 그런데 오전 10시에 개장하는 박물관 앞에는 30분 전부터 이미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연간 120만 명이 들른다니 그럴 만했다. 이 미술관은 다양한 컬렉션(인상파 후기인상파 초기모던 현대미술 등)으로 유명하지만 저 특이한 건물로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현대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가 15년에 걸쳐 구상한 역작이다. ‘영혼의 사원(Temple of Spirit)’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위로 갈수록 점점 더 커지는 가분수 형태 원기둥이다. 내부도 가운데가 천장까지 뚫린 원형공간으로 내벽 가장자리의 전시실은 벽에 설치한 나선형 램프로 오르내리며 드나든다.

내가 엽서를 산 곳은 미술관의 기념품상점. 수많은 엽서 중 유독 이걸 고른 것은 ‘영혼의 사원’ 겉에 쓰여 있는 글 때문이었다. 해석하면 이렇다. ‘미술관은 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가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배우고 대중 역시 예술가와 결속함을 배우는….’ 부연하자면 예술과 대중이 만나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런데 구겐하임이 그걸 ‘학교’라고 표현한 데는 의미가 있다. 예술과 대중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장소로 기능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나는 예술이야말로 인류가 소통하고 결속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 더 있다면 종교일 테고. 이 둘은 다른 피부와 언어, 상이한 역사와 문화, 심지어는 엄청난 시간차까지도 극복한다. 그런 점에서 인류가 창조해낸 그 어떤 것보다도 위대하다. 그런 만큼 ‘유니버설 랭귀지’로서 미술품을 수집 보존하며 그걸 창조한 예술가와 소비자인 대중을 소통시키고 결속시켜 주는 미술관의 역할은 ‘학교’ 이상이다. 사재를 털어 미술관을 세우고 후세가 감상을 통해 소통하고 결속하여 인류와 세상을 더 아름답고 멋지게 만들도록 한 이들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이런 미술관으로 특별한 거리를 조성한 뉴욕시민 역시 존경스럽다. ‘뮤지엄 마일’(마일은 1.6km를 뜻하는 미국의 거리척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뮤지엄 마일’은 구겐하임을 비롯해 세계 최대 컬렉션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오브 아트 등 미술관 9개가 들어서 있는 5번가의 1.9km 구간을 지칭하는 특별한 도로명이다.

이 미술관들은 모두 뉴욕의 심장인 맨해튼의 도심, 거기서도 시민의 휴식처인 센트럴파크의 가장자리인 5번가(Fifth Avenue)에 있다. 5번가는 맨해튼의 스트리트(Street·동서방향 도로) 번지수 앞에 동(E)과 서(W)를 붙이는 데 기준이 되는 남북방향 도로다. 그런데 5번가가 어떤 길인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이 밀집한 곳이다. 경제잡지 포브스가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으로 부른 지역이다.

그런 5번가에서도 뮤지엄 마일에는 한 채에 수십억, 수백억 원씩 하는 최고급 아파트가 즐비하다. 어찌 보면 세상의 중심이랄 수도 있다. 그 틈에 미술관이 포진한 형국이니 이걸 단순히 ‘박물관 거리’로만 보아 넘길 수는 없다. 어렵사리 벌어 모은 귀중한 재산을 아무 대가없이 쾌척한 인물들이 보여준 무한한 인류애적 산물이란 점에서다. 누군가가 이곳에서 그런 정신을 배울 테고, 그중엔 훗날 이들처럼 인류를 위해 헌신할 사람도 나올 테니 단순한 미술품 전시장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도 미술관은 ‘학교’다. 인류가 소통하고 결속하여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기를 꿈꾸는….

―뉴욕(미국)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미술관#학교#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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