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광표]反應과 認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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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무상보육 누리과정의 내년도 예산 배정을 놓고 국회에서 여야 협상이 한창이다. 국고 지원, 우회 지원, 지방채 발행 등이 거론되었고 우회 지원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영 개운치가 않다. 중앙정부가 국고를 지원하든, 우회로 지원하든 지방채를 발행하든 결국 그 돈이 그 돈,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그렇다 치고 내년 이맘때 또 어찌할 것인가. 게다가 정권이 바뀌면, 지방선거에서 자치단체장과 시도교육감이 바뀌면…. 무상급식을 둘러싼 자치단체장과 시도교육감의 갈등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정치권의 선거 공약으로 나온 것이다. 교육감 후보든 대통령 후보든, 여든 야든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은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 깊이 있는 검토 끝에 나온 공약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얼마 전 종교학자인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의 글 ‘오늘의 한국 종교’를 읽었다. 이 글은 ‘문화의 안과 밖: 오늘의 시대에 대한 문화적 성찰’이라는 대중 강연의 원고였다. 글은 당대(當代)를 사는 주체에게 있어 당대를 기술하고 그것을 통해 당대를 진단하며 나아가 당대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에 대한 정 교수의 견해로 시작된다. 그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식을 위해 요청되는 최소한의 거리를 확보하지 못할 때, 사물에 대한 인식은 인식이 아니라 즉각적이거나 직접적인 반응에 그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반응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 인식으로 여기곤 한다.”

최소한의 거리 두기, 이는 객관적 성찰 같은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반응(反應)은 인식(認識)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무상보육, 무상급식은 모두 반응의 수준이었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에 어떤 가치와 철학이 담겨 있는지, 교육적으로 볼 때 또는 복지의 측면에서 볼 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리의 현재 상황으로 미루어 어떻게 어느 정도로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저 표를 얻기 위한 동물적 반응일 뿐, 객관적 인식에 이르지 못했다. 지금의 예산 배정 협상도 마찬가지다. 역시 현재 상황을 넘어가기 위한 반응에 불과해 보인다. 그러니 이 문제는 또다시 재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오류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교육당국은 이 같은 오류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육당국과 수능 출제 시스템을 불신했던 사람들도 이번엔 어느 정도 개선되리라고 믿는 것 같다.

그 믿음처럼 수능 출제 시스템은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출제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문제 해결의 핵심이 아니다. 출제 오류 방지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 데다 솔직히 말해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오류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그 이상이어야 한다. 대입과 수능이라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점수제가 아니라 9등급제가 합당한 것인지, 모든 학생이 수능을 볼 필요가 있는지, 중하위권 등급 학생들은 결국 들러리가 아닌지 그리고 수능이 왜 필요한지까지. 거리 두기와 객관적 성찰을 통해 본질적인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애써 외면해온 우리의 치부와 상처를 정면으로 만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번 수능 사태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다.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kplee@donga.com
#수능#무상보육#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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