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김병지 “선수보다 더한 가치 찾을 때 떠난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11월 26일 06시 40분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신의손(부산 GK 코치)의 K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이 ‘살아있는 전설’ 김병지(전남)에 의해 깨졌다. 김병지는 22일 광양에서 열린 상주상무와의 홈경기에서 44세 7개월 14일의 나이로 골문을 지키며 대기록을 세웠다. 스포츠동아DB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신의손(부산 GK 코치)의 K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이 ‘살아있는 전설’ 김병지(전남)에 의해 깨졌다. 김병지는 22일 광양에서 열린 상주상무와의 홈경기에서 44세 7개월 14일의 나이로 골문을 지키며 대기록을 세웠다. 스포츠동아DB
■ ‘최고령 K리거’ 전남 골키퍼 김병지

현역 출전 기록 ‘44세 7개월 14일’로 늘려
‘내 뒤에 공은 없다’ 신념으로 열심히 뛰었다
은퇴 명분 찾기 전 까지는 쉼 없이 달리겠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한국프로축구의 위대한 역사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남 드래곤즈의 ‘살아있는 전설’ 김병지(44)가 다시 한 번 뜻 깊은 이정표를 세웠다. 22일 광양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상주상무와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4’ 37라운드 홈경기에 출전해 팀의 3-1 승리를 이끌며 역대 K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44세 7개월 14일로 늘렸다. 프로통산 678경기만이다. 신의손(부산 아이파크 골키퍼 코치)이 FC서울 시절인 2004년 8월 세운 44세 7개월 9일의 종전 기록을 10년 만에 넘어선 것이다. 본인과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이 기록은 경기 후 이틀이 흐른 24일에야 외부로 알려졌고, 뒤늦게 화제가 됐다.

그러나 김병지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자신의 전부이자, 영혼의 힘인 가족은 알아줬으니 말이다. 이날 김병지는 부인 김수연 씨, 세 아들과 함께 조촐히 저녁식사를 했다. 짙은 여운이 흐른 밤, 그의 아내는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에 이런 글을 올렸다. ‘프로 밥 먹은지 23년. 질린다 소리 한 번 없이, 한 눈 한 번 팔지 않고 뛰다가, 걷다가, 뛰다가…지치면 터벅터벅…어쨌든 간다. 무수히 많았던 시간들 속을 지나오며 울고 웃었던 많은 일들이 추억으로 생각나는 날이다. 무던히도 무던한 사람(후략).’ 무던하지만 그라운드에선 누구보다 당당한 남자 김병지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 한계는 없다!

“그냥 감사하게, 또 행복하게 운동하고 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김병지의 첫 마디였다. 1992년 울산현대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후 어느덧 23년째가 흘렀다. 한결같은 우직함과 꾸준함, 노력과 열정.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때로는 혹독한 시련도 닥쳤지만, ‘내 뒤에 공은 없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텼고 지금에 이르렀다. 신의손이 누구도 깰 수 없으리라 여겨졌던 엄청난 기록을 세웠을 때 김병지의 나이가 대부분의 선수들이 은퇴의 기로에 서는 34세였으니, 그저 대단할 뿐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또 있다. 공식 프로필 상의 몸무게 78kg(키 184cm)이다. 이는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술, 담배 등 몸에 해로운 것을 일절 하지 않는, 지독히 외로우면서도 가장 단순한 삶이 롱런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기록을 의식하고 깨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은 없었지만, 목표가 없지는 않았다. 적어도 500경기까지는 그랬다. 자기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400경기, 또 500경기 출전은 분명 자극이자, 동기부여였다. 그렇게 500경기를 넘어서자, 더 이상 목표에 대한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똑같고 단순한 일상을 반복하면서 600경기를 채웠고, 이제는 700경기를 향해 온 몸을 던지고 있다.

“목표는 있었다. 그러나 한계는 두지 않았다. 지금은 700경기를 새 목표로 설정했다. 물론 이를 넘어서면 또 다른 계획을 세울 것이다. 앞날이 어찌될지 몰라도.”

김병지는 축구화를 신고 지낸 35년을 ‘걸어온 인생’이라고 정의했다. ‘한 번쯤 쉬어가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곳(전남)에서 2년을 보내며 여유를 가질 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심호흡을 할 때가 아닌, 진정으로 더 뛰어야 할 때라고 느껴진다.”

● 은퇴? 선수 이상의 가치 찾을 때!

대전 시티즌의 ‘레전드’로 군림하다 올 시즌 전반기를 끝으로 전북현대에서 유니폼을 벗은 최은성(43) 골키퍼 코치는 “내게는 (김)병지 형이라는 버팀목이 있었다. 내가 오래 뛸 수 있었던 건 김병지란 존재가 있어서”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김병지에게는 그런 존재가 없다. 진정으로 외로운 삶일 수 있다. 그 대신 다른 이야기를 통해 자극을 얻는다. 권순태(30·전북), 김용대(35·서울) 등 친한 후배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형님만큼만 뛰었으면 해요.”

그렇다. 김병지는 ‘30대 중반이면 퇴물’이란, 현역 선수를 바라보는 우리 축구계, 나아가 스포츠계의 인식전환에도 큰 역할을 했다. 골키퍼가 필드 플레이어들보다 상대적으로 체력소모가 덜한 특수 포지션임은 분명하지만, 40대 중반은 적잖은 나이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부에선 ‘너무 많이 뛰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그만둬야 한다’ 등 김병지가 듣기에는 불편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많은 후배들은 “형님이 오래 뛰어줘야 우리도 오래 할 수 있다”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다.

김병지는 전남 입단 직후였던 지난해 초 “정말 안 된다 싶을 때 언제든 미련 없이 선수인생을 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한 가지가 추가됐다. ‘명분’이다. “선수로 뛰어야 할 가치와 명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긴다면 그만둔다. 다만 그 명분은 아직 찾지 못했다. 찾아가는 중이다.” 김병지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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