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Travel]‘유리온상’ 혁명 일궈 일본서 가장 부유한 농촌 관광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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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日농촌의 성공모델 ‘다하라 市’ 현장

아쓰미 반도 남단의 해발 100m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라고뷰 호텔 전망대 앞으로 펼쳐진 장관. 웨딩채플의 첨탑 뒤로 이세 만(오른편)과 태평양의 풍광이 조망된다. 아쓰미 반도(일본아이치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아쓰미 반도 남단의 해발 100m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라고뷰 호텔 전망대 앞으로 펼쳐진 장관. 웨딩채플의 첨탑 뒤로 이세 만(오른편)과 태평양의 풍광이 조망된다. 아쓰미 반도(일본아이치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성공한 사람에겐 마땅한 이유가 있다. 동기를 부여해주는 롤모델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세상을 두루 다니다보면 도시나 마을도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보자. 거대도시 빌딩 숲의 이 자연공원은 가장 이상적인 도시조경으로 손꼽힌다. 인공(도시)과 자연(숲), 비즈니스(빌딩)와 휴식(공원)이라는 각각의 기능을 극대화시킨 창의적인 건축이란 점에서다. 하지만 이런 걸작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한 선각자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시민공원(Public Park)’의 효시라는 영국 리버풀의 버큰헤드 공원이 센트럴파크의 선배 격이다. 만든 이는 세계최초 유리창건물 ‘수정왕궁(Crystal Palace·1851년 런던박람회 대표건물)’을 설계한 조지프 팩스턴 경(1803∼1865). 공원을 개장한 1847년은 산업혁명 이후에 만들어진 대도시가 허다한 문제점을 막 드러내기 시작한 때였다. 그런 영국을 미국인 건축가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1822∼1903)가 방문했다. 공원개장 3년 후(1850년)였다. 그는 우연찮게 버큰헤드 공원을 보고는 무릎을 쳤다. 19세기 대도시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모델타운’임을 직감한 것이다. 8년 후, 미국 뉴욕시는 ‘뉴 파크’ 설계를 전 세계에 공모했다. 옴스테드도 공모에 응했고 그가 제출한 공원설계가 뽑혔다. 그게 뉴욕의 센트럴파크다.

센트럴파크는 1860년대 미국 도시미화운동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카고에서 꽃을 피웠다. 건축의 도시 시카고의 현재 도심이 그것인데 출발은 1893년 시카고가 개최한 미대륙 발견 400주년기념 만국박람회였다. 시는 박람회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켜 투자를 끌어들였고 폐장 후엔 그 터를 공원화했다. 시는 도심에 그 공원을 두고 주변을 격자형에 대각선을 가미한 도로로 재편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이런 아이디어를 낸 이도 역시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옴스테드였다. 이후 도시미화운동은 샌프란시스코와 클리블랜드 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며 곳곳에서 무질서한 구도시를 환골탈태시켰다.

나는 올 8월 다하라(田原) 시를 취재하며 비슷한 것을 느낀다. 규모(주민 6만4000명)나 성격(농촌)이 전혀 다른 일본 농촌도시를 미국의 대도시와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노력과 그로부터의 감화가 혁명적 변화의 발단이 되고 그로 인해 시민의 삶이 윤택해졌다는 점에서는 같다. ‘에코 가든 시티(Eco Garden City)’ 다하라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잘사는 농촌이다. 또 가장 모범적으로 개발된 도시이며 현재도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력하는 지자체이기도 하다. 50년 전만 해도 고구마나 감자밖에 나지 않던 오지의 가난한 농촌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내년 3월 11일이면 전국의 농축수협과 산림조합이 동시선거로 새 조합장을 선출한다. 우리 농어촌이 탈바꿈할 좋은 기회다. 이를 계기로 우리 농촌 지도자들이 다하라를 찾아보면 좋겠다. 오늘의 혁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이라고뷰 호텔, 전망 뛰어난 노천욕 명소

인천을 출발한 항공기가 내린 곳은 혼슈의 남쪽 나고야 시 부근 주부공항(아이치 현). 공항은 동편 아쓰미 반도와 핀셋처럼 쌍을 이루며 미카와 만 바다를 에워싸고 있는 지타 반도에 자리 잡고 있다. 다하라는 건너편 아쓰미 반도의 남단까지 3분의 2를 차지한 농촌도시다.

다하라는 우리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반도 끝에서 바다절경을 감상하며 노천욕을 즐기는 해발 100m 언덕 위 이라고뷰 호텔이 목적지. 도쿄 나고야 후지산을 찾는 단체여행의 일정에 들어간다. 거기서 바라보는 이세 만 바다는 풍광이 기막히다. 그리고 호텔의 전망 로텐부로도 일품이다. 온천탕에 몸을 담근 채 감상할 수 있는 긴 모래 해변은 일본서도 이름난 명소. 또 북쪽으로 이어지는 3km의 롱비치도 일본 최고의 서핑명소다. 한겨울에도 수온이 10도여서 서핑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다하라의 내륙은 농촌이고, 평지는 모두 밭이다. 그곳을 지나다 댐을 보게 됐다. 안내하던 아쓰미 반도 관광청의 고모다 도시노리 국장이 ‘저수지’란다. 바다로 흘러드는 물을 마지막으로 가두는. 그런데 저수지라고 하기엔 규모가 꽤 컸다. 강을 막을 정도다. 하지만 다하라엔 강이 없다. 근방의 밭을 관통하는 폭 1m가량 수로가 여기선 가장 큰 강(시요카와)이다. 강도 없는 다하라, 그런 곳이 일본 최고의 부자 농촌이라니.

의문은 이내 풀렸다. 농가의 허다한 밭과 유리온상에 노출된 대형수도꼭지를 보고나서다. 지하 파이프라인으로 공급하는 농업용수 배출구인데 여기선 이 물로 농사를 짓는다. 그렇다면 수원은? 아까 본 그 저수지이고 그런 게 40여 개나 된다. 물은 80km 북방의 산간에서 파이프라인으로 끌어온다. 다하라는 산악과 저수지, 저수지와 농가가 모두 파이프라인으로 이어져 있다. 이게 반도 끝까지 밭과 온실에 물을 대며 다하라를 일본 최고의 부자농촌으로 만든 ‘도요카와 용수’(用水)다.

다하라 농민이 생산한 국화 등 꽃만 전문적으로 출하하는 초대형 플라워 스테이션.
다하라 농민이 생산한 국화 등 꽃만 전문적으로 출하하는 초대형 플라워 스테이션.
일본 최고의 국화 산지

일본 혼슈엔 이런 광대역 용수시스템이 7개나 있다. 1950년대 정부가 가설을 시작해 1960년대 후반에 완공시킨 것인데 도요카와 용수도 그중 하나(1968년 통수)다. 하지만 시작은 달랐다. 다하라는 20여 년이나 앞섰다. 선각자 곤도 주이치로 당시 시장이 주도했다. 정부의 거부로 진척은 부진했지만 다하라의 구상은 이미 반도 구석구석에 용수를 공급하겠다는 매우 선진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정부가 용수시스템 구축에 나서자 주민 스스로가 추가비용을 내겠다며 실현시켰다. 이 물로 가난을 탈출하겠다는 일념에서였고, 그 일념은 농사개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1등 농촌’의 꿈을 이뤄냈다.

고모다 국장은 나를 ‘플라워 스테이션’으로 데려갔다. 이곳은 초대형 화훼출하장. 농가가 위탁한 꽃을 상자에 담아 컨베이어벨트로 실어와 품질검사를 하고 있었는데 모두 국화였다. 그러고는 냉동 창고로 옮겨 십수m 높이에 격자형으로 설치한 칸에 나누어 보관했다. 이 꽃 상자는 출하시기가 되면 운송로봇이 자동 출하한다. 다하라는 일본에서 국화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으로 국화 가격의 기준을 정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철저한 품질관리가 그런 지위를 가져왔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런 출하시설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과일과 채소출하장 등 두 개가 더 있다. 2000억 원대 규모의 출하시설을 갖춘 곳은 전국에 다하라 한 곳뿐이다.

유리온상에서 수경재배한 멜론을 직접 따먹는 관광농원 ‘다베링오구쿠’(王國)(위쪽 사진)과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다하라 멜론.
유리온상에서 수경재배한 멜론을 직접 따먹는 관광농원 ‘다베링오구쿠’(王國)(위쪽 사진)과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다하라 멜론.
그런 다하라의 농산물 생산량은 현재 브로콜리 전국 2위, 양배추와 토마토 각 3위, 멜론은 7위. ‘다하라 멜론’은 방문객 쇼핑리스트 넘버원일 정도로 인기가 좋다. 타지에서 1만 엔짜리를 800∼1500엔 정도면 먹을 수 있는데 맛도 좋다. 멜론을 온상에서 직접 따먹는 과수원도 7곳이나 있다. 실컷 먹는 데는 1인당 2800엔, 거기에 한 개를 가져가면 3500엔을 받는다. 여기선 판매 중인 멜론에 날짜를 적어준다. ‘가장 맛이 좋은 날’이다.

바다 메워 도요타 공장 유치

덕분에 다하라는 2006년 전국 지자체 중 농산물 생산량 1위(농업 7240억 원, 화훼 3540억 원)를 기록했다. 동시에 실업률은 최저(2.6%). 당시 다하라의 풍요를 엿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농부가 현금 3억 원을 들고 페라리(이탈리아산 슈퍼카)를 사러 갔다. 그런데 판매원이 응대를 하지 않자 도쿄로 가서 페라리를 사서는 직접 몰고 왔다는 것이다. 이런 다하라에서 나는 네덜란드를 떠올린다. 지면이 바다수면보다 낮아 거대한 둑으로 바다를 막아 땅을 확보하고 그 땅에 스며든 해수를 풍차로 퍼내며 농사를 지어 부국이 된 곳. 그런 네덜란드의 농업을 상징하는 곳이 있다. 스키폴공항(암스테르담) 주변의 거대한 유리온상 화훼단지다. 다하라에는 유리온상이 우리농촌의 비닐하우스처럼 온 땅을 뒤덮고 있다.

다하라의 혁명적인 변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아쓰미 만 해안의 임해공업단지도 그렇다. 1960년대 다하라는 천혜의 어장을 포기하고 그 바다를 메우는 용단을 내렸다. 그게 이곳이다. 여기 들어온 도요타 제2공장은 단일완성차공장(부품생산부터 조립까지 전 과정)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렉서스는 전 차종을, 랜드크루저(4Runner모델)는 전량 여기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바로 옆에 태양광 발전단지도 있다. 50MW(메가와트)급 메가솔라(솔라패널 21만4560장으로 만든 거대규모 태양광발전소)와 6MW급 풍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다. 생산한 전기는 다하라에서 쓰고도 남아 다른 지역에 판매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오지, 강도 없는 반도의 빈약한 농촌에서 혁명이 가능했던 배경은 무엇일까. 다하라에선 ‘와타나베 가잔’의 도전정신을 첫손에 꼽는다. 그는 메이지유신(1868년) 27년 전에 세상을 뜬 다하라 번의 기술직 사무라이였다. 19세기 중반 난학(蘭學·일본과 통상하던 네덜란드로부터 들어온 서양지식을 통틀어 일컫던 말)에 심취한 그는 일본의 민주적 개혁을 주창했다. 그러다 봉건제를 고수하던 수구파의 모함으로 구속되고 이곳 다하라에서 지내다가 자결했다. 일본 최고의 화가 다니 분초의 제자였던 그는 인물화에도 출중했는데 성격과 느낌을 담은 그의 인물화는 국보로 지정됐다.

다하라의 스즈키 가쓰유키 시장은 “그가 생전에 보여준 도전정신과 미래를 향한 개혁의지가 다하라 시민에게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 최고가 되도록 이끌었다”면서 “그 정신을 전하기 위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꾸준히 교육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Travel Info▼

찾아가기 ◇항공: 인천∼나고야(주부국제공항) 혹은 오사카(간사이공항) 이용. ◇철도: 미카와 다하라 역(아쓰미센 철도) 하차. ▽주부국제공항 출발: 메이테쓰센∼가나야마∼도요하시∼미카와 다하라. ▽오사카 출발: 나고야∼가나야마∼도요하시∼미카와 다하라. ▽도쿄 출발: JR신칸센(히카리)∼도요하시∼미카와 다하라

다하라 시 ◇관광협회: www.taharakankou.gr.jp ◇이라고뷰 호텔: www.viewhotels.co.jp 현지전화 0531-35-6111

기쿠소의 나메시덴가쿠 정식
기쿠소의 나메시덴가쿠 정식
토속음식 ◇다하라 돔부리(덮밥)가도(街道): 다하라 시에만 40개 식당. 돈가스 등 다양한 덮밥 제공. 인접한 도요하시 시에는 카레우동가도가 있어 다양한 카레우동을 줄길 수 있다.

◇기쿠소(きく宗): 꼬치에 꿴 생두부에 미소(일본된장)를 발라 구운 것(덴가쿠나베시)을 무청시래기를 넣고 볶은 밥과 함께 먹는다. 도요하시 역 앞, 120년 고옥. 수요일 쉼.

서핑=이라고 미사키(반도 끝)와 롱비치가 유명. 서핑 최적기는 5월과 9월. 서핑숍 ‘미크(mic)’는 일본 서핑의 선구자인 가토 마사타카 씨(61)가 롱비치에서 40년째 운영 중. 레슨(영어가능)은 두 시간에 5000엔(장비 렌털 포함). www.oceankids.net 현지전화 0531-45-4577

아쓰미 반도(일본 아이치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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