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중경]공짜밥 때문에 가난한 아이들 공부시킬 돈이 없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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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에 예산 퍼붓느라 원어민교사-컴퓨터교실 등 축소
오히려 아이들 학습 기회 잃어
부작용 깨달은 국민 절반이상 “100% 무상급식엔 반대”
‘무상공약은 선거 필승전략’ 野와 진보, 迷妄에서 깨어나야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
무상급식과 관련한 찬반 논쟁은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직(職)을 걸고 서울시민의 의견을 물었을 때 지금과 같은 관심을 끌었다면 대선 잠룡 서열 판도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가난한 아이들의 자존심을 지켜 주려면 아이들 모두가 무상급식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따뜻하지만 논리적이지는 못하다. 수혜 대상 아이들 모르게 급식비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동사무소에서 아이 부모에게 급식비를 주고 부모가 그 돈을 학교에 내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무상급식에 따른 예산 부족으로 원어민 영어교사 채용이 줄어 가난한 아이들의 영어 접근기회가 줄어들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컴퓨터 교실이 축소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부작용에 대한 실태조사를 거쳐 정책 변경이 필요한지 검토할 때가 되었다. 부잣집 아이들 공짜 밥 먹이느라 가난한 집 아이들의 학습 기회가 축소되고 공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면 가난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커지므로 100% 무상급식을 계속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무상급식은 진보 진영이 교육계를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필승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강철같이 견고해 보이던 필승전략에 심각한 균열 조짐이 보인다. 한 일간지의 설문조사 결과에는 국민의 52%가 100%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는 무려 국민의 66%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가 정확하다면 무상급식은 필승전략이 아니라 필패전략이다. 진보 진영이 긴장하지 않으면 큰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진보 진영과 공동보조를 취한 야당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변화무쌍한 민심을 탓할지 모르나 진보 진영이 자신의 필승전략을 먼저 반추해 보는 것이 순서이다. 영원한 필승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몇 번 통할지 몰라도 반복되면 오히려 허를 찔려 패배의 길로 들어선다. 조금이라도 눈속임의 성격이 있는 전략이라면 패배의 길은 의외로 빨리 열린다.

군사 천재 나폴레옹의 전술은 ‘중앙배치전략(Strategy of Central Position)’이라고 해서 군사학자들이 독창적인 전술로 인정하고 있다. 기동력과 포병화력을 조화시키는 전술인데, 기만작전으로 유인하여 적군을 둘로 나누고 그 사이에 아군 주력을 배치한 후 둘로 나뉜 적군을 순차적으로 각개 격파하는 절묘한 전술이다. 이 전술로 예나, 아워슈테트 등 많은 승전을 일구어냈지만 마지막 결전인 워털루 전투에서도 적용하다 참패했다. 나폴레옹에게 연전연패했던 프로이센(프러시아)의 백전노장 블뤼허가 나폴레옹의 반복된 눈속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블뤼허는 속는 것처럼 보였지만 행군 방향을 정반대로 바꿔, 영국군을 몰아붙이던 프랑스군의 우익을 강하게 들이쳐 전세를 뒤집었다.

무상 시리즈로 정치적인 입지를 구축하고자 하는 선거 전략은 더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예산이 빠듯한데 여유 있는 집 아이들까지 공짜 밥을 먹여야 하느냐”는 이유 있는 항변을 “아이들 밥 한 끼 마음 편히 먹이자”는 데 딴죽 건 쩨쩨하고 몰상식한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책략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지난 장면들이 반복해서 상영되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무상급식의 부작용이 구체적인 사례와 객관적인 수치로 드러나는 가운데 진보 진영과 야당이 100% 무상급식 주변을 맴돈다면 의외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진보 진영은 입장을 바꾸기가 쉽진 않겠지만 출구전략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명확한 입장 표명 없이 ‘무상급식’을 ‘의무급식’으로 용어만 바꾸고 넘어가려 한다면 지지 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뿐이다.

무상급식 논쟁을 계기로 ‘프레임 선점을 통해 감성에 기대는 선동정치’가 이 땅에서 더이상 먹혀들기는 어려워 보인다. 논쟁이 처음 불거졌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보수 진영을 얕보고 같은 전술로 너무 깊숙이 전진한 진보 진영이 거꾸로 포위당하는 상황은 영원한 승리는 없다는 ‘전승불복’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게 한다. 보수 진영에 나폴레옹과 같은 불세출의 전략가는 없을지 몰라도 나폴레옹을 침몰시킨 블뤼허 정도의 백전노장은 상당수 있다.

최중경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동국대 석좌교수
#무상급식#나폴레옹#중앙배치전략#선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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