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캠프 “난생처음 내일을 꿈꿨어요… 내 인생 다시 쓰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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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제로캠프’ 참여 소년 수형자 69명의 ‘특별한 뮤지컬’

20일 김천소년교도소 대강당에서 열린 뮤지컬 공연 ‘날개’에 출연한 수형자들이 배우 최불암 씨와 지역 주민, 수형자 가족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복장을 하고 연기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20일 김천소년교도소 대강당에서 열린 뮤지컬 공연 ‘날개’에 출연한 수형자들이 배우 최불암 씨와 지역 주민, 수형자 가족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복장을 하고 연기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최불암 씨
최불암 씨
무대에 선 수의(囚衣) 차림의 경호(극중 이름)는 슬픈 눈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는 “너무 면목이 없어 고개조차 들 수 없지만…. 이제 더이상 그렇게 살지 않겠다”며 아버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19세 소년의 노래를 끝으로 주위가 어두워지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20일 국내에 하나뿐인 소년교도소인 경북 김천소년교도소 대강당에서 열린 뮤지컬 ‘날개’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이날 공연에는 배우 최불암 씨(74)가 이끄는 수형자 교화 프로그램 ‘제로캠프’에서 2년간 실력을 갈고닦은 ‘특별 관리 대상’ 아이들 69명이 배우와 스태프로 참여했다. 학교 폭력으로 소년원에 들어온 경호가 뇌사에 빠진 아버지에게 속죄의 마음을 전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는 그들의 실제 경험담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초 김천소년교도소 아이들은 최 씨를 만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각자의 사연을 직접 적어왔고 전문 시나리오 작가의 도움을 받아 대본을 완성했다. 최 씨가 섭외한 노래 무용 연기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매주 2차례 소년교도소를 찾아 아이들에게 연기와 발성 등을 가르쳤다. 아이들은 지난해 12월 시범 초연을 한 뒤 20일 완성된 첫 공연을 선보였다.

주연 ‘무대감독’ 역할을 맡은 김모 군(19·특수강도 2범)은 다섯 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방황하다 고교를 자퇴했고 교도소에 수감된 ‘사고뭉치’였다. 교도소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징벌을 자주 받았던 그는 뮤지컬 연습을 하며 태도가 바뀌었다. 김 군은 이날 공연에서 “우리의 인생도 다시 써보고 싶습니다. 아직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 많으니까요”라고 독백하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는 “뮤지컬을 통해 처음으로 내일을 계획하는 법을 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로캠프는 2012년 4월 소년원 수형 경험이 있는 한 독지가가 천주교 교정사목위원회에 30억 원을 기부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청소년원장 등을 지내며 수형자의 재활을 이끌던 최 씨는 소년원 내에 문화예술 활동 프로그램을 개설해 아이들의 교화를 돕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운영위원장까지 맡아 종교계 예술계 인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지난해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뜻을 담은 제로캠프를 출범시켰다.

최 씨는 “예술은 인간 내면의 심성을 순화시키는 최고의 수단이다. 소년교도소 아이들이 받은 관심과 사랑이 나눔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소년원 뮤지컬#제로 캠프#김천소년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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