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 신인왕… 2루수, 1류가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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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일 많고 빛 안나 과거엔 비인기… 수비 강조되며 핵심 포지션 떠올라
공-수-주 갖춘 만능선수들이 맡아… 안경현 “전엔 2루수 MVP 꿈도 못꿔”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투수는 중고교 야구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포지션이다. 재능 있는 야구 선수 10명 중 9명은 투수를 택한다. 투수 다음은 유격수다. 핫코너를 지키는 3루수, 거포들이 주로 맡는 1루수나 외야수도 나름 인기 포지션이다.

2루수는 애매하다. 타격은 조금 떨어지는 대신 수비력이 좋은 선수가 대개 2루를 맡는다. 인기 포지션은 아니지만 할 일은 많다. 좌우 수비는 물론이고 병살 플레이, 견제 플레이, 번트 수비 시프트에 중계 플레이도 책임져야 한다. 2루수는 유격수와 함께 가장 많이 움직여야 하는 포지션이다.

요즘 야구에서는 2루수의 위상이 조금 달라졌다. 한국 프로야구가 공격 못지않게 수비를 중요시하면서 생겨난 변화다. 현역 최고의 2루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정근우(한화)는 2012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되면서 역대 2위에 해당하는 4년간 70억 원에 계약했다.

올해는 한발 더 나갔다. 18일 열린 2014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최우수신인선수 및 부문별 시상식은 2루수들의 잔치였다. 넥센 2루수 서건창(25)은 거포 박병호와 20승 투수 밴헤켄(이상 넥센)을 제치고 MVP에 선정됐다. 프로야구 취재기자단 투표 결과 총 유효표 99표 중 77표를 얻은 서건창은 한국 프로야구 33년 역사상 첫 2루수 출신 MVP가 됐다. 신인왕 역시 NC 2루수 박민우(21)의 차지였다.

현역 시절 명 2루수로 활약했던 안경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전 두산)은 “예전에는 투수가 아닌 야수가 MVP가 되려면 30홈런-100타점은 기본이었다. 홈런을 많이 칠 수 없는 2루수가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건창의 MVP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200안타 돌파다. 서건창은 올 시즌 최다안타(201개)와 최고타율(0.370), 최다득점(135점) 등 3관왕에 올랐다. 135득점 역시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다 기록이다. 128경기에서 이뤄낸 기록이라 가치는 더욱 높다.

안 위원은 “예전과 달리 요즘 2루수들은 공격과 수비, 주루를 고루 갖춘 만능 선수이다. 서건창과 박민우 모두 타격에 좀 더 유리한 우투좌타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톱타자 겸 2루수인 둘은 시즌 내내 잘 치고, 잘 막고, 잘 달렸다. 서건창은 48도루, 박민우는 50도루를 각각 기록하며 공격의 첨병 노릇을 했다.

이날 MVP를 받으면서 서건창은 2006년 류현진(LA 다저스·전 한화)에 이어 한국 프로야구 사상 두 번째로 MVP와 신인왕을 모두 석권한 선수가 됐다. 서건창은 2년 전에 신인왕을 차지했었다. 서건창은 MVP 부상으로 트로피와 3600만 원 상당의 기아자동차 K7을 받았다.

두 번이나 신고 선수로 입단했고 군대마저 현역으로 다녀온 서건창은 “2년 전 (신인왕을 받기 위해) 이 자리에 섰을 때처럼 오늘도 그간 힘들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어려운 시기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온 덕분에 오늘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를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는 “너무 가슴속에 와 닿는 말이라 준비해 왔다. 오늘 큰 상을 받았지만 난 여전히 부족한 선수다. 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낭떠러지에 서 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내년 시즌에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최고 2루수를 넘어 한국 최고 야구 선수가 된 순간에도 그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MVP#신인왕#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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