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국회의원, 깡패, 양아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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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깨나 쓰는 사람을 ‘주먹’이나 ‘어깨’라고 부르는 것은 신체의 한 부분을 통해 어느 사람을 가리키는 제유법(提喩法)적 표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깡패란 말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의 김두한은 어깨 혹은 일본어로 ‘가다’ 정도로 불렸다. 깡패는 광복 후 사회 혼란을 틈타 정치권력과 결탁해 폭력을 휘두르던 동대문파 ‘이정재’ 같은 이들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 쓰였다. 깡패는 영어 갱스터(gangster)에서 온 깡과 한자어로 무리를 뜻하는 패(牌)를 결합한 말이라고 하지만 이런 말의 어원은 늘 그렇듯이 정확하지는 않다.

▷양아치는 깡패와는 계보가 다르다. 양아치는 거지를 뜻하는 동냥아치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 불쌍한 거지에 못된 거지의 이미지가 덧붙여진 것은 19세기부터다. 세도정치로 피폐해진 일부 극빈자들이 장터에 떼로 몰려다니면서 장사를 방해하는 수법으로 먹을 것을 뜯어냈다. 떼거지란 말이 이때 생겼다. 근대화 이후에도 떼거지는 넝마주이 형태로 살아남았다. 이런 거지를 양아치라고 불렀고, 오늘날 체격으로나 뭐로나 깡패도 못되는 주제에 깡패 짓 하고 다니는 불량배를 양아치라고 부르게 됐다.

▷그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에서 박근혜표 창조경제 예산의 한 항목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책상을 내리치며 “그만하세요”라고 언성을 높이자 새정치민주연합 강창일 의원이 “왜 얘기하는데 시비를 걸고 그래? 저 ×× 깡패야. 어디서 책상을 쳐. 저런 양아치 같은…”이라고 받아쳤다.

▷누가 시비의 원인을 제공했는지 따지자면 끝이 없다. 강 의원의 욕은 김 의원이 책상을 내리친 데서 비롯됐고, 김 의원이 책상을 내리친 것은 새정치연합 간사인 이춘석 의원이 불필요하게 정회를 요청하며 태업하는 태도를 보여서 그런 것이고, 이 의원은 새누리당이 무리한 예산을 요구해 그랬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비교해볼 수 있겠지만 국민의 눈엔 누가 깡패고 누가 양아치냐 따지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국회의원#깡패#양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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