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피플] 이승기 “우승하고 입대 행복”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11월 19일 06시 40분


전북 이승기(오른쪽)가 용병 카이오와 함께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그는 올 시즌 24경기에서 5골·8도움을 기록하며 전북의 K리그 클래식 우승에 앞장섰다. 사진제공|전북 현대
전북 이승기(오른쪽)가 용병 카이오와 함께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그는 올 시즌 24경기에서 5골·8도움을 기록하며 전북의 K리그 클래식 우승에 앞장섰다. 사진제공|전북 현대
■ 24경기 5골·8도움 전북 우승주역, 12월초 입대 소감

FA컵 준결승전 승부차기 실축 악몽
감독님·김남일 선배 위로에 힘 얻어
제주 원정 쐐기골로 트라우마 날려
우승후 입대…행복하게 머리 밀겠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은 전북현대의 천하였다. 정규리그 38경기 중 36경기를 치른 가운데 승점 77로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팀도, 팀 구성원들도 모두 훌륭했다. 전북은 최근 8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고, 모두 이겼다. 프로축구 1부리그에서 역대 최다 연승은 2002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울산현대, 2002년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성남일화(현 성남FC)가 세운 9연승이다.

전북 선수 전원이 열심히 뛰었다. 등록된 38명 모두 대단한 시즌을 소화해왔지만, 특히 공격형 미드필더 이승기(26)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전북에서 2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그는 24경기에서 5골·8도움을 올리며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아직 시즌이 끝난 것도 아닌데, 벌써 우승했다는 게 정말 실감나지 않는다”며 얼떨떨해한 이승기는 군 복무를 위해 12월 15일 상주상무에 입대한다.

● 선배의 한마디…후유증을 털다!

10월 22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차라리 악몽이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성남과의 FA컵 준결승에서 전북은 승부차기 혈투 끝에 무릎을 꿇었다. 4-4로 팽팽한 가운데 마지막 키커로 나선 이승기의 슛은 허공을 갈랐다. 허탈한 패배에 그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라운드에서도, 라커룸에서도, 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클럽하우스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눈물을 쏟았다.

생전 처음 겪는 승부차기 실축이었다. 최강희 감독이 건넨 “괜찮다. 클래식에서 우승하면 된다. 우승을 하고 군대로 당당히 떠나자”라는 말이 오히려 더욱 가슴을 아리게 했다. 말도, 식욕도 잃은 그를 보다 못한 선배가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베테랑 미드필더 김남일(37)이었다. “요 며칠만 휴대폰 만지지 말고 있으면 괜찮아진다. 난 대표팀에서도 엄청나게 실수했고, 나로 인해 실점도 해봤다.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다 추억이 된다. 누가 뭐라 해도 한 귀로 흘려라.”

다행히 이승기는 후유증을 털었다. 그렇다고 독기를 품은 것은 아니었다. 애꿎은 발을 원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냥 남은 경기에서 본때를 보여주자는 생각만 했다. 나 때문에 우승을 놓쳤으니 내가 한 번 일을 저질러보자는 마음만 가졌다.” 그렇게 11월 8일 제주 원정을 맞이했다. 이기면 조기에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고, 이승기는 후반 4분 쐐기골을 성공시키며 전북의 3-0 완승을 진두지휘했다. 가슴 속 깊이 남은 트라우마를 깨끗이 씻은 순간이었다.

“군 입대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건 맞다. 잔 부상도 많았다. 발목과 무릎, 심지어 근육까지 안 아픈 데가 없었다. 부상 없는 시즌이 개인적인 올해 최대 목표였는데…. 그래서 가장 기쁘면서도 가장 힘든 시즌이었다.”

● 나도, 팀도 우승&승리 DNA 상승!

이승기는 이제 프로 4년차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광주FC에 있었고, 2013시즌부터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 강등 경쟁과 우승 경쟁을 두루 경험해본 몇 안 되는 선수다. 그러나 이제야 털어놓지만, ‘전북 맨’이 된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연이은 부상 탓이었다. 다치고 몸이 좋아질 만하면 또 다쳤다. 지난해 입단 후 발목이 성한 날이 흔치 않았다. “정말 전북과 난 맞지 않는지 고민을 계속했다. 그런데도 감독님은 날 계속 믿어주셨고, 한 번도 외면하지 않았다.”

최강희 감독은 한 번도 이승기에 대한 믿음이 흐트러진 적이 없다고 했다. 이적을 확정한 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놓고 마주한 스승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이)승기 아저씨는 전혀 걱정 안 해. 믿으니까 주전도 될 수 있어. 제대로 해봐.”

상위권보다 하위권이 더 익숙한 광주에서 ‘에이스’ 역할을 한 이승기는 최고 레벨의 팀에서도 당당히 주전으로 뛰었다. 이렇게 이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 이겼단다. “질 경기도 비기고, 이길 경기는 확실히 잡았다. 자신감이다. 광주가 아주 못한 건 아니다. 승리 기회도 많았다. 다만 (승리의) 경험이 부족했다.”

물론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은 남아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아시아 클럽 정상은 번번이 K리그를 빗겨갔다. 이제 군 입대까지 앞뒀으니, 향후 2년간은 아예 꿈의 무대를 밟지 못한다. 그래도 웃을 수 있다. 마음 속의 짐을 내려놓았으니 홀가분하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군대에 가게 되니까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머리를 밀 수 있겠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