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육성한다는 금융당국, 뒤로는 창구지도로 옥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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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라인 상품 금리 맞춰라”… 법적 근거도 없는 가격 규제
모바일 금융혁명 조류에 역행… 소비자에 돌아갈 혜택 가로막아

정부가 최근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금융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규제 완화에 착수했지만 뒤로는 비공식적인 창구지도를 통해 모바일 금융상품에 사실상의 가격 규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들은 온라인 기반의 신(新)개념 상품을 내세워 소비자를 끌고 싶어도 정부의 간섭에 가로막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17일 한국금융연구원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온라인을 통해 파는 금융상품의 금리 수준을 오프라인 기반의 상품과 비슷한 수준에서 맞추도록 일선 시중은행에 지침을 내렸다. 모바일, 온라인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금융상품은 은행이 판매 원가를 줄일 수 있어 예금금리를 올리거나 대출금리를 내리는 등 소비자에게 금리 우대를 해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판매 채널에 관계없이 같은 상품이면 은행이 금리 차별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이날 “모바일 앱과 점포는 운영비에 상당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모바일로 제공하는 상품은 보다 고객친화적인 금리나 수수료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하지만 시중은행 담당자들을 조사한 결과 모두 감독당국으로부터 모바일 등을 통한 비대면(非對面) 채널의 가격을 점포 수준으로 맞추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서 연구위원의 조사 결과는 이날 금융연구원과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한 ‘은행의 채널·점포 효율화 방안’ 토론회에서 발표됐다.

이런 비공식적인 가격 규제는 동아일보 취재 결과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위의 한 당국자는 “법·제도상 규제할 근거는 없지만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창구지도를 하는 오래된 관행이 있다”며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관행”이라고 말했다. 또 A은행의 스마트금융 담당 직원은 “금융당국이 온·오프라인 상품의 금리를 맞춰야 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 관계자는 “판매 채널 간 금리 차별화를 허용하면 모바일뱅킹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 고객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지도를 하고 있다”며 “핀테크를 옥죄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가격 규제 자체가 모바일 금융혁명이라는 시대적 조류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은행이 보다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현행 금융실명제법을 완화하고 콜센터에서 판매할 수 있는 금융상품의 종류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서는 기존 은행들이 통신사들과 합작하거나 단독으로 자회사를 세우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발표된 보고서의 용역을 맡긴 금융위 측은 “오늘 제기된 규제 이슈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융실명제법을 비롯해 핀테크 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지적되는 일부 규제에 대한 법 개정 작업이 조만간 이뤄질지 주목된다.

이날 토론회는 국내 은행들의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온라인 기반의 금융 거래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미래점포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진행됐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웰스파고, HSBC 등 글로벌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비용 절감을 위해 점포 수를 줄였고, 남아 있는 점포들도 상당 부분 최소 인력만 지키는 ‘미니 점포’나 ‘셀프서비스 점포’ 등으로 재편했다.

한편 금융위기 이후에도 꾸준히 점포망을 키워온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점진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들 은행의 점포 수는 올 6월 말 현재 7451개로 2012년 말 대비 3.2% 감소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부실 점포의 통폐합에도 불구하고 점포당 당기순이익은 2013년 5억90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51.6% 급감했다. 은행 점포의 추가 구조조정과 미래형 점포를 위한 혁신이 절실한 것이다. 최근 동아일보 설문에서도 전문가의 60% 이상이 ‘10년 뒤면 지금 있는 시중은행 점포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응답한 바 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송충현 기자

#핀테크#금융#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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