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패널위에 억새지붕… 불티 튀자 사방에서 ‘펑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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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펜션 바비큐장 화재 4명 질식사

발생 10여 초 만에 불길은 펑펑 소리를 내며 바비큐장의 좁은 출구마저 집어삼켰다. 불길에 휩싸인 네 명이 출구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이들이 손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뜨거운 불길이 앞을 가로막았다. 바비큐장에는 스프링클러는커녕 소화기 하나 없었다. 마지막 생존자는 온몸에 불이 붙은 채 펜션 앞마당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로부터 40여 분이 지난 뒤 전남 나주 동신대 1학년 고모 씨(19·여)와 정모(30), 송모(35), 류모 씨(40) 등 희생자 4명이 바비큐장 출입문 바로 앞에서 서로를 껴안고 질식해 숨진채 발견됐다. 맨 아래에 깔려 있는 이는 고 씨였다. 한 생존자는 “대학 동아리 선배들이 쓰러져 있는 여자 후배를 마지막까지 구해내려다 변을 당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희생자들은 ‘예비 신랑’ ‘새신랑’ ‘꽃다운 신입생’ 등 저마다 사연을 갖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숨진 정 씨는 내년 1월 중순 오래 사귀어온 연인과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정 씨의 사촌형(36)은 “동생은 동아리 선후배 간 우의가 참 돈독하고 의협심과 배려심이 남달랐다”며 “동생이 불길을 피하기보다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을 내던진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정 씨는 고 씨를 온몸으로 감싼 채 숨져 있었다. 동아리 초창기 멤버인 류 씨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모임에 참석했다가 변을 당했다.

○ 동아리 선후배 모임서 참변

15일 오후 9시 45분경 전남 담양군 대덕면 H펜션 바비큐장에서 불이 나 50여 분 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4명이 숨지고 광주 모 구의회 의원인 펜션 실소유주 최모 씨(55)와 김모 씨(30) 등 3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중 김 씨는 전신에 화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하다. 경상자 3명은 병원 치료 후 귀가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소방대는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목격자의 말에 따라 화재로 붕괴된 바비큐장을 수색해 숨진 4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불이 날 당시 펜션에는 동신대 패러글라이딩 동아리 선후배 등 26명이 있었다. 여학생 6명을 포함한 재학생 13명과 졸업생 8명, 가족 5명 등이었다. 재학생들과 몇몇 졸업생은 이날 담양의 한 야산에서 라이딩한 뒤 펜션을 찾았다. 경찰은 “이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화재 당시 바비큐장에는 17명이 있었고 나머지는 방에서 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평범한 삼겹살 파티 왜 피해 컸나

불이 난 바비큐장은 58m²(약 18평) 면적의 직사각형 형태다. 바닥은 목재고 벽면은 샌드위치 패널(스티로폼을 가운데에 두고 얇은 철제로 만든 건축용 판)로 지어졌다. 억새로 엮어 올린 지붕에서 바닥까지 높이는 2.5m에 불과했다. 벽면에 미닫이 형태의 창문 4, 5개가 설치돼 있었지만 출입문은 단 1개뿐이었다. 담양소방서 관계자는 “샌드위치 패널은 열이 가해지면 철판이 벌어지면서 안에 있는 스티로폼이 타 유독가스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했다. 바비큐장에는 숯불로 고기를 굽는 원형 테이블 4개가 있고 4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소화기는 물론이고 간이 스프링클러나 비상조명등 비상벨 등 그 어떤 소방장비도 없었다.

한 생존 학생은 “불판 아래 숯불의 불이 거세게 올라오자 누군가가 불을 끄려고 물을 부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은 숯불을 받치고 있는 기름받이 공간에 고인 고온의 고기 기름에 물이 닿자 기름에 섞인 불티가 지붕으로 튀어 오르면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건축물 대장에는 펜션 대지면적이 1236m², 연면적 415m², 건축면적 315m²였다. 모두 7개 건축물이 등재돼 있지만 바비큐장은 빠져 있다. 펜션 내 소규모 비닐하우스 등은 별도의 허가나 신고가 필요하지 않지만 지붕과 벽면을 갖추고 펜션의 부속 건물로 쓰인 바비큐장은 신고 대상이다. 2005년 5월 문을 연 H펜션에는 소화기 9대가 있었지만 그중 3대는 10년이 넘은 제품이었다.

담양=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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