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엉망진창 스무살 청춘,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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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생각이 났다. 오늘 존 레넌이 죽었구나.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코를 한 번 훌쩍 들이켰다. 1980년 12월 9일을 나는 아마도 잊지 못하리라. ‘이매진’을 소리 내어 불렀다. ―‘스무살, 도쿄’(오쿠다 히데오·은행나무·2008년) 》

20대 초반의 청춘들은 짙고 푸르렀다. 연애를 움틔우기 위해 온종일 고민하다 ‘끼릭’ 하고 친구와 늦은 밤 술병의 주둥이를 비틀어댔다. 해가 진 뒤 학교 앞 주점에서 이파리가 가냘픈 싸구려 김치전을 찢으며 새벽까지 꿈과 미래를 이야기했다.

청춘들은 게걸스럽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둔 고민들을 풀어내 비밀스러운 공간에 날이 밝을 때까지 글을 썼다. 친구들과 아무 계단에나 앉아 버드나무 가지 바람에 엉키는 모습만 보아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잘 울고 잘 웃었다.

청춘들은 해가 지나며 소리 없이 무뎌져 갔다. 자기 몸보다 큰 양복 재킷을 입고 학교에 가 ‘취업 턱’을 쏘러 다니던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들은 더 이상 날을 넘겨가며 사랑을 이야기하지도, 10년 뒤 지금보다 더 웅대해지겠다는 꿈을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함께 나누는 이야깃거리도 변했다. 네 살 많은 복학생 오빠가 좋아한다는 고백을 해 왔다며 발을 동동 구르던 여자애는 미간을 찌푸린 채 같은 직장 선배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소설 ‘스무살, 도쿄’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삶 전체가 실수와 실패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 속 ‘청춘’들은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실수와 실패는 청춘만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청춘을 잃었다. 돈을 버는 일과 청춘을 맞바꿨다. 실수와 실패를 하지 않으려 24시간을 발버둥치며 산다. 여린 속내를 드러내면 발을 저는 피식자 혹은 나약한 낭만주의자로 보일까 마음을 닫는 법도 배웠다. ‘정말 우리에게도 스무 살이 있었을까’ 싶을 때 엉망진창으로 사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마냥 부러워진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스무살 도쿄#오쿠다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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